2009년 4월 19일 부활절 둘째 주일 예배

이사야서 25:6~9, 요한일서 1:4~7, 요한복음서 20:26~31

자살을 결심한 한 엄마 이야기
참 딱한 가정이야기가 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죽은 남편이 가해자였다. 보상비로 뺏기고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다니는 두 아이가 간신히 남의 집 헛간 일부를 빌어서 산다. 엄마는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빌딩 청소를 하고, 낮에는 학교 급식을 돕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고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자연히 초등학교 3학년 큰 아들 몫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냄비에 콩을 잔뜩 집어놓고 집을 나서면서 메모를 써 놓았다.
"영호야. 냄비에 콩을 안쳐 놓았으니 이것을 조려서 오늘 저녁 반찬으로 해라. 콩이 물러지면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엄마가."
그 날도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 지친 이 엄마는, 정말 죽고 싶은 생각으로 수면제를 사 들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불을 덮고 나란히 잠들어 있는 큰 아들의 머리맡에 "엄마에게!" 라고 쓰인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엄마, 오늘 엄마가 말해준 대로 콩이 물렁해졌을 때 간장을 부었는데, 동생이 짜서 못 먹겠다고 투정해서 한 대 때렸더니.. 울다가 잠들어 버렸어요. 열심히 콩을 삶았는데... 엄마, 미안해요. 내일은 일 나가기 전에 저를 꼭 깨워서 콩 삶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엄마! 피곤하죠? 저희들 때문에 엄마가 고생하시는 것을 다 알아요. 꼭 건강하세요."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던 그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의 편지를 눈물로 읽고는 수면제를 다 버렸다.
그리고 큰 아들이 만든 콩자반, 너무 짜서 작은 아들이 먹지 못하겠다고 투정했던 그 콩자반을 그 밤에 눈물범벅이 된 채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자.
가장 큰 기쁨은 이렇게 '서로' 기쁜 것이라고 성서는 말한다. 요한일서 본문에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요한일서를 쓴 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들은 소식은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요일1:7에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고 된다는 것'이다. 빛 가운데 살아가면 사귐이 있고, 사귐이 없다면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도 자신의 처지만 생각해 본다면 그 엄마는 자살 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큰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새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딸을 둔 엄마 이야기
어려서부터 피아노 콩쿠르 상을 휩쓸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친 아이가 있었다. 예고를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벌써 그 실력을 인정받아서 독일에 있는 어느 대학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제 독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 보았더니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내가 그 애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 현실 앞에서 그 어머니는 어떤 목사님을 찾아가 고백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저 아이에게 해 온 이야기는 단 두 마디였습니다. ‘먹어!’, ‘피아노 쳐!’” 그러면서 "하나님! 내가 우리 아이에게 '먹어!, 쳐!'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머니에게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사귐은 빛 가운데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려면 우리의 사귐이 빛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사귐을 통하여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서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도마 앞에 나타난 예수께서 '나를 만져보아라(요20:27)' 했을 때, 갑자기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 외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랍비, 선생님'이라 부르다가 갑자기 '주님'이라니…
네셔널지오그래피 채널의 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도마는 예수의 막내 동생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 주장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것이 사실이라면, "형!"이라 했을 상황에서 도마는 뜬금없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 외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예수와 도마와의 관계, 사귐을 생각하게 되었다. 도마는 언제까지나 예수가 혁명가이며, 이 난국을 타계해줄 현실적인 메시아로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실패한 혁명, 부도로 망한 예수는 실망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패배자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자신에게 나타난 예수를 보고 처음으로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제자들이 예수님 죽고 난 이후 비로서 자신들의 발을 씻기고, 가르치시던 예수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패배자와 실패자인 예수가 다시 나타나신 것이다.
바로 그 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된 것이다. 제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은 바로 이런 관계에까지 진행된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타나신 예수를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살하려는 엄마 앞에 나타난 아들의 편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 바로 예수가 나타나는 현장이다.
여러분들도 다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