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임계점 Critical point
마가복음서 10:52, 사도행전 22:6~8, 이사야서 42:16, 시편 124
2021년 8월 22일_배안용 목사
한국 교회에서는 다메섹에서 있었던 바울의 체험을 회심의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전도를 중요시하는 한국 교회의 상황에 바울의 회심과 개종은 깊은 연관성과 동기를 주기 때문이다. 유대교에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개종을 선택하여 사도의 자리까지 올라간 전설적인 인물로 묘사된 바울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당시 그리스도교에 속한 사람들을 도외시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왜냐하면 당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사회의 하층민들로 구성된 그리스도교를 로마 시민권자이며 율법학자였던 바울이 상당 부분 성장시켰다고 말해버리면, 그리스도교도 사회에 영향력을 지닌 조직으로 성장하는 종교적인 성공 신화로 단순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어떻게 갑자기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려 했던 것인가를 살펴보아 그의 회심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다메섹 이전의 삶을 “내가 전에 유대교 신자였을 때의 소행은 여러분이 다 들었을 터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내 동족 중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신봉하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갈 1:13~14)”라고 고백한다. 바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유대교에 있어 매우 합법적인 일이었다. 율법은 부도덕한 이스라엘인을 죽이는 것(민 25:1~5), 죄악을 저지른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인을 죽이는 것(민 25:6~15)이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받은 율법 교육과 지위를 생각해 본다면, 그의 유대교적인 신앙과 사상이 매우 높은 차원에 도달했으며, 그로 인해 유대 사회에서 윤리적이고 영적인 자리에 올랐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바울은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빌 3:5~6)”이라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리스도교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은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를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갈 1:16)”라고 말한다. 예수를 ‘그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것은 다메섹에서의 경험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이고 신비적인 체험과 더불어 객관적인 선포의 의미를 지닌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교로 돌아서는 체험을 하지만, 순간에 전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앙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들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점차적으로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우리는 바울이 개종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향한 것은 유대교를 완전히 버렸다기보다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으로서 유대교보다는 그리스도교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다메섹 체험을 ‘선지자적 소명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부르심을 받는 장면과 유사한 단어들을 선택하며 설명한다. 그것은 개종과는 다른 것이다. 또한 바울이 그리스교를 전파할 때도 자신의 특별한 신학적 사상이 아니라 유대의 깊은 메시아 소망에 대한 결과로 표현한다. 바울은 다메섹 이후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된’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이방의 사도가 된 바울’로 표현한다. 그래서 ‘사울’이라는 이름도 로마식으로 ‘바울’로 부르게 된 것이다.
과학에서는 임계점(臨界點, Critical point)이라는 현상을 말한다. 액체인 물은 1 기압 100℃에서 수증기로 변한다. 물에 압력을 가해서 218.3 기압이 되면 물의 끓는점은 374.2℃가 되지만, 그 이상의 온도가 되면 더 큰 압력에도 물은 액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 온도를 물의 임계 온도라 하고, 이때의 압력을 임계 압력이라고 한다. 바울은 스스로 다메섹 사건을 개종이나 회심의 사건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개종의 사건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이고, 그의 신앙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가 되었고, 자신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 중에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을 받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여,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바울이 주장하듯이 ‘소명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게 될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