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섭리
마가복음서 13:34~35, 에베소서 1:10, 이사야서 64:7, 시편 65:9~13
2021년 7월 11일_배안용 목사
이사야는 “주님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신다(사 64:5)”고 증언한다. 이사야가 외치는 이런 희망의 말씀은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위로를 보내는 말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절망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것인가?’하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라며 이스라엘이 처한 현실을 고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사 64:7)”시키셨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막 13:28~29)”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계절의 흐름이 자연의 순리대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식물의 변화를 통해 계절을 예측할 수 있다. 그렇게 자연이 그 순리대로 바뀌듯이 주님께서도 가까이 오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주님이 오시는 그날과 그때는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예수님조차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막 13:32)”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막 13:33)”이라고 권면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날과 그때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비유를 통해 다시 설명하신다. “사정은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라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막 13:34~35)”이라고 말씀하신다.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는 여행하는 주인이 떠날 때부터 깨어 있지는 않는다. 여행의 일정에 따라 대략 돌아오는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었을 것이고, 주인이 돌아올 때쯤 되어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돌아오는 정확한 시간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모른다. 그래서 돌아오는 때가 되면, 우리가 무화과나무의 잎을 보고 여름이 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듯이, 깨어서 주인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날과 그때는 자연의 순리(順理,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처럼 하느님의 섭리 攝理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현상을 보고 계절을 예측하듯이,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어두운 상황에서는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셨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나뭇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여름이 올 것을 예측하듯이 답답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일수록 그날과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계시지 않는가?”하는 탄식이 나올 때, 그날과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뜻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때는 알지 못한다고 하셨고, 도둑과 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무작정으로 뜬금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그때가 언제쯤인지 알 수 있으려면, 우리는 조금 멀리서 우리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서 보면 내 시야가 공간적으로 훨씬 넓어져 마을이 보이고, 도시가 보이고, 도시들이 연결된 모든 것이 보인다. 여행을 간 사람이 갔다 오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대략적인 시간의 계산이 가능하게 된다. 우리가 도둑과 같이 바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는 4계절이 분명하다고 말하지만, 한국에 여행 온 사람들은 갑자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문 앞에 오는 일이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막 13:30)”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날과 그때가 꼭 세상의 종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것은 때에 따라 하느님의 섭리하심이 나타난다는 말씀이며, 그것을 우리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정확한 시간은 초저녁일지, 새벽일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자연의 순리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느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엡 1:10)”이라고 증언한다. 때가 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시각을 갖기 위해 하느님의 섭리하심 속에 머무는 소명 공동체가 되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