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포용, 새로운 시작
누가복음서 23:39~43, 갈라디아서 2:16, 창세기 25:1~4, 시 18:13~20
2019년 10월 20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예수님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주변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기존의 종교에 대해 인정하는 정책을 폅니다. 그래야 식민지의 반발 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흥종교에 대해서는 강하게 탄압합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집단이 생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에 로마황제에 대한 기도를 추가한 것으로 황제숭배에도 예외를 두었고, 로마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로마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겼고, 로마에서 활동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 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다(3:27~28)는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유대교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지만 결국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하느님의 약속된 백성에서 제외된 이방인일 뿐입니다. 또한 율법은 아홉 가지를 지킨다 해도 한 가지를 어기면,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율법준수의 완성은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할례보다는 세례 받는 것을 강조하지만, ‘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인 그리스 사람들은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완벽한 유대인이 되고 싶어 하며,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교가 탄압을 받을 것을 우려해 바울을 공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양쪽 옆에 사형을 받은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한 죄수가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눅 23:39)”라고 했을 때, 다른 죄수가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23:40~41)”하고 꾸짖으며,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23:42)”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예수님과 그 옆에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들은 모두 로마법을 어긴 죄인입니다. 그리고 나무에 매달렸기 때문에 율법에 의해 저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로마법과 율법을 모두 어겨 저주를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23:43)”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이 강도는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인류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법과 율법을 모두 어기고 십자가형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조차 받지 않은 죄수를 용서하시고, 하느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 사실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신 21:23)’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갈 2:16)”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16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이라는 표현이 12세기 이전의 라틴어 번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에 대한 순종과 그 신실하심으로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셨지만, 이 저주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으셨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신실하신 믿음에 있기에,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유대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구원의 바른 길을 제시하는 바울을 박해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하느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그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인과 유대인, 자유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의 구별과 차별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라 강조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을 떠올리며, 그의 신실하심과 우리에게 주시는 소명을 더욱 굳게 다지며, 과부와 고아, 종과 갇힌 자, 차별 받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선교를 시작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공동체로서 세상의 모든 차별을 없애시는 성령과 함께 주님의 나라를 준비합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