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수수께끼
마가복음서 4:11~12, 갈라디아서 5:24~25, 신명기 30:19~20, 시편 81:1~10
2019년 6월 16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신 30:19)”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복과 저주를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의 선택으로 생명과 사망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 당신들의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30:20)”이라고 강조합니다. 모세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므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택하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갈 5:2)”라고 주장합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유대인이 강조하는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을 차별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5:4)”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결국 주님의 은혜에서도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갈 5:5)”고 전합니다.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아직도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박해를 받겠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거리낌은 없어졌을 것(5:11)”이라고 합니다. 할례를 전하지 않는 것, 곧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부정했기 때문에 유대인으로부터 박해와 고난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갈 5:16)”이라고 강조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자유와는 반대편에 있고, 그것은 성령의 인도가 아니라 육체의 욕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게 경고합니다.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 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 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5:19~21)”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다(5:22~23)”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이 인도하시는 공동체인지를 증명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세상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율법주의는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며, 끊임없이 성령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5:24)”입니다.
신학자 톰 라이트는 “믿음이란 눈을 감고 불가능한 것을 믿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의 사람들 곧 ‘메시아 안에’있는 사람들에 속한 구성원으로 서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 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자갈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막 4:4~7)”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전하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어느 곳에 씨를 뿌리는지에 따라 생명이 자랄 수도 있고, 저주에 속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사 6:9~10)” 것이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막 4:11)”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메시아 안에 있는 사람들에 속해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갈 5:25).”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