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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시 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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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으로 행하는 사람
누가복음4:1-19, 로마서2:14-15.
2019년 7월 7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까닭은 사람이란 영묘한 능력을 지닌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사람’을 가리킨 말임을 알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성서에서도(“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말씀하심에 주목하게 한다.(로마서 2:13-15)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보면 자기의 양심을 버리고 거짓으로 위장하여 쉽게 부자로 살아가며 높은 지위를 행세하기 위해 그 삶의 작태를 보면 온갖 술수와 자기 비리를 정당화시켜 위장된 양심 수단으로 자기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는 위장과 거짓으로 점철되어가는 세상만사를 보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회 현실들을 보며 많은 지탄으로 서로가 이를 가장하여 거짓 수다ㄴ으로 이를 가장하며 살아가는 세살에서 자기 양심을 어기기고 가장하는 술수만 보고 살아가는 삶의 우리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 고하를 막론하고 “양심 부재 현상의 자리”를 보며 많은 것을 지탄으로 서로 삶을 영위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한다. 이것의 사회 현상으로 우리 모두의 양심은 피차가 무디어 가고 있다. 
하늘, 땅, 사람 (천. 지. 인)이라는 말에는 늘 하늘의 마음, 땅의 마음,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일찍이 옛 어른들의 말씀들을 존중히 알고 살아왔다. 이는 {천지인}은 하늘, 땅, 사람이 하나 됨의 일치로 삶을 살아야 함에 그 이치를 깨닫게 했다. 이는 당시 양심이 곧 신뢰의 사회를 만듦에 그 방법으로 깨우치게 함에 주목한다. 서구의 계몽주의 전통 역시 도덕성을 설명함에 있어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하여 이를 설명해 왔음을 보게 한다. 이는 곧 양심으로 모든 관계와 관계가 서로 상통하고 소통하면 모든 것은 자연히 그 감성이 도덕적으로 양심을 따라 행하니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여기에 삶의 질서가 형성된다. 이는 곧 양심의 소리가 준엄함을 보게 된다.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두 군데 있다. 하느님은 사람의 신체 두 군데를 선정하여 지으심을 받게 하심에 여기서 중요함을 알게 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실 때 이성과 양심의 이 두 군데에 장식해 두심을 알게 한다. 이 두 군데는 이성은 머리로 하게하고 심장에는 따뜻한 양심이 되어 거할 곳으로 알게 한다. 모든 사물에는 “다스리”는 이치가 있어야 하기에 머리로 지혜를 갖게 하고 양심은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호하여야겠기에 따뜻한 심장에 창조심의 의미를 알게 한다. 이는 하느님의 경륜과 사랑의 뜻을 펼치고 있음을 알고 이성과 감성을 믿게 한다. 
자크 룻소는 양심에 대하여 “양심이여! 양심이여! 신성한 본능이여! 영원한 하늘의 소리여! 무지에 둘러싸인 총명하고 자유로운 믿음직한 안내자여! 사람을 하느님과 닮게하며 선과 악에 대하여 과오를 범함이 없으신 심판자여! 사람의 본성을 탁월하게 하며 사람의 행위를 도덕에 따르게 함은 바로 ‘너인’ 것이다.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함에 주목하게 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성령’에 대한 고찰
누가복음4:18,마태12:28,32.요한복음3:32
2019년 6월 30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성령에 대한 구약과 신약에서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자연과 인생의 삶에 대한 활동을 가르쳤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 죽으심, 부활을 전제로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게 행하시는 내적 활동에 대한 기본에 대해서 가르침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신학에서는 성령의 3위 일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세 가지 모습이 되어 나타난 것으로 성삼위로 말함은 원래는 한 몸으로 불러 성삼위 일체라 함으로 3자가 하나가 되는 의미로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세 가지 모습이 되어 나타남으로 원래는 한 몸 이라 하여 “성 삼위” 뜻으로 하나가 됨을 알게 한다. 신약 복음서에서 보면 성령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한다. 신구약 중간기의 성령 관념은 첫째가 하느님과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와의 관련과 하느님과 미래 (메시야 소망)에 대한 관계로 알게 했으나 오늘의 현재에 머물러 있는 현재는 신약에서 나타난 메시야 소망으로 넘쳐 남을 알게 한다. 이는 곧 새 시대가
세례 요한으로 시작하게 함을 믿는 것이다. (누가1:5-17, 1:41, 47, 2:25-27, 36). 메시야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하느님의 영(신)으로 하느님의 신을 통해 인류역사에 나타심을 알게 한다. 여기에 따라 자기의 신(영)으로 인류 역사에 나타나심을 믿게 한다. 여기에 따라 사도 시대에 벌서 예수의 나심과 성령의 능력을 연관시키고 있음을 믿게 한다. (마1:18,20; 눅1:35, 요1:14) 그리고 복음서들이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신 것을 보도 했고 (막1:10 마3:16,17. 눅3:22, 4:1, 14, 요1:32) 그리고 예수께서도 메시아 예언이 자기에게서 완성됨을 알게 한다. (눅4:18, 마12:28, 32, 요3:34). 
예수께서 영광 받으심을 전제로 함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최후의 설화에서 성령의 오심은 하느님의 최상의 은사요, 인간의 최고의 경험임을 알게 한다. 이는 1)성령은 진리의 신이요 위안자, 보혜사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그리스도와 그 사업까지 완성시킬 것이다. 2)인간들의 운명에 관계되는 예수의 가르치신 증거를 충분히 보여 주실 것을 믿게 한다. 3)성령이 예수님 이상의 진리를 가르치실 것은 없으나 예수께서 가르치신 바 그 진리와 그의 능력에 대해 더 알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믿게 한다. 4)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믿어야 한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았으며 ㄸ한 그 자신이 친히 오셨음을 믿음으로 감당케 한다. 
여기서 우리가 살피어야 할 것은 성령의 내재적 능력은 하느님의 아들(자녀)이 된다는 것과 하느님의 자녀와 그 사랑을 앎으로 일 체험 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은 아버지 되신 하느님께로 나가는 방법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 알게 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지는 믿음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이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민족화해주일의 선교 : 화해
레위기25:10,마태복음5:23-24
2019년 6월 23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우리는 지난 새천년(2000년)을 맞으며 한국 사회는 지금부터 21세기에 걸맞은 새 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고 제2의 건국50주년을 맞이하며 그동안 쌓인 민족의 한을 풀며 이를 알게 한다. 우리 민족은 그동안 건국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하나인 민족이 둘로 나뉘어왔기에 통일을 소원하며 살아 왔던 과거를 회개 하려는 뜻에서 여기에 당시 “국민의 정부”는 뜻을 모아 권위주의와 이념주의를 배제하기 위해 “제 2 건국운동”을 갖게 됨을 알게 한다. 이는 닫힌 민주주의를 펼치었으며 관치경제, 대결주의, 등 과거 정부는 닫힌 민주주의를 제창해 왔기에 “국민의 정부”는 “제2의 건국운동”의 6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화해, 협력, 평화}를 통일의 과정과 목표를 설정함에 그 당시 “기독교 사상” 잡지 6월에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고 나의 설교(기독교 사상 지2000년6월호 7-12p)를 보게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인간들의 구원이라면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곧 복음이기에 여기에 회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에 회개는 곧 구원으로 가는 길이 됨을 알게 한다. 회개는 인간으로서 하느님 앞에 취할 올바른 자세이다. 여기서 회개는 하느님 앞에서 취할 자세이다. 여기서 곧 하느님과 인간 사이 통로는 ‘화해’이다. 마찬가지로 한 민족이 반목하고 살아 온 처지에서 서로의 하나인 민족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반목하고 살아 온 “두 민족”에게 가까이 하는 통로는 서로 화해하는 길 밖에 없다. 그리하여 한국기독교는 구원과 화해의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한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민족은 어떻게 살아 왔는가? 분단의 역사에서 서로 형제끼리 죽이며 살아왔다. 상대방이 쓰러질 때 우리는 승리의 환호성을 올렸고 상대방이 무너질 때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찌 있단 말인가? 이는 과연 [누구의 승리인가?] 오늘의 하늘의 백성은 한반도 한민족의 평화를 위해 화해의 기도와 화해의 통일 백성으로 한 반도의 서로의 하느님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