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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시 102:18]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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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내림사랑
요한복음21:15-17, 고후6:11-13.갈라디아1:1-5, 로마서1:2
2012. 5. 20.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아빠)라 부르라고 가르쳐 주신 의미가 있다. 이것은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아빠라고 친히 하신 말씀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친 말로 부모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우리가 자녀이며 또한 상속자가 되었다'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것은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창조주의 자녀이며 그 분의 모든 부요 함이 우리에게 상속할 존재가 되었다는 포부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했는가?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주님은 스스로 종이 되어 낮아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음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부활하셔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가 되게 하신 그 은총이 갖는 의미는 순전한 "하나님 아버지의 내림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언어는 언약을 통해 맺어진 관계로 '아빠'라는 고백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와 의존과 순종의 관계로 그 의미를 알게 한다. 이 관계는 자녀에게 있어 아버지는 사랑과 의존, 순종의 대상으로 피를 나눈 사랑의 관계이었음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자녀가 된 사람을 끝까지 신실하게 대해 주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배반할 때에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때로는 사랑의 매를 드시기도 하신다. 그들이 회개하면 즉시 용서하시고 그들을 안아 주신다는 것으로 언약을 알게 한다. 이로써 하늘 아버지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뜻도 알게 하지만 '아빠'로써 하나님의 친근감을 표현한다면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초월감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로 경외해야 할 거룩하신 분이 누구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 하늘의 자녀이다. 여기서 주의하는 것은 마태복음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우리'라는 의미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마태는 '아빠'라는 칭호에 '우리'라는 말을 첨가하여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교회 공동체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고 자녀가 된다는 의미를 알게 한다. 이는 '우리가' 언약을 통해 한 몸이 되고 그 관계는 사랑과 순종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자녀끼리의 서로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알려면 사랑의 속성을 알아야 하고 그 속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고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우리의 영생을 위해 십자가 구원사랑을 하셨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 믿음의 내용은 순전한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게 하는 것이 기본 자세이다. 그리하여 믿음과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믿음, 희망, 사랑은 다 같은 것이지만 총칭해서 이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고로 사랑하는 자는 믿게 되고 믿는 자는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한 몸이 되어 자녀로써 피의 혈육을 알게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의미로 이는 사랑을 알게 한다.
성서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성품과 그 사역들을 들어 이를 알게 한다. 즉 다윗이 목자, 전사, 왕, 시인, 그리고 음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인품을 알게 되듯이 이는 인간성의 통찰력을 알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면 그 분의 속성을 안다. 예로써 하나님을 창조주, 심판자, 구주, 우주를 섭리하신 분, 아버지 되신 분, 등으로 그 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면 우리 삶은 삶을 통하여 그 분이 어떻게 일하시고 사랑하시는 지를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삶의 형편을 보시고 우리가 겪는 문제에 그 근원과 해결을 위해 계시(啓示)하심도 알게 하는 것이다. 초월적인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는 방법으로 나타나시는 계시는 아버지께서 이루시는 일을 미리 말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섭리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믿음의 자리는 멍석을 깔고 춤추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통해 혈육의 관계로 피는 물보다 진하는 면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유는 사랑의 관계로 엉킨 삶의 본질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기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친히 말함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도직의 기원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내림사랑'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곧 우리 아버지 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하며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말한다.(갈4:4-7)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을 유업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요 다른 믿음의 자녀들과 함께 형제 된 자들 임을 알게 한다. 세상을 얻는 것이나 부름을 받는 것은 혈육의 의미로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내림사랑"을 알게 한다.
흔히 세상살이 속에서 '내림사랑'은 어버이로부터 몸의 모양이나 성품이 전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세상의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감사하게 느끼고 효도하려고 하여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이는 부모가 산고를 통하여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끈은 내림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하려고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하려 해도 자기가 낳은 자식만큼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의 이치를 알게 한다. 자기가 낳은 자식만큼 부모를 사랑하지 못함은 감히 우리는 오늘의 삶에서 경험하고 아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하여 성서는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인 하늘에 계시다'.(마태23:9)고 하신다. 마치 강물의 근원은 바다이기에 근원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것이지 물이 역으로 위로 거슬리지 못하는 그 이치를 알게 한다. 세상의 부모와 자녀, 자녀와 부모의 사랑의 차이는 사랑의 내림사랑으로 이를 알게 한다. 강보다 더 큰 바다가 있기에 물은 바다의 근원지를 향하여 내려가는 내림을 아는 것이며 무한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큰 은혜로 내리시는 사랑이 영생을 사는 사랑으로 이는 "하나님 아버지 내림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누가복음11:1-4, 잠언 30:7-9, 디모데전서6:7-10
2012. 5. 6.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사람들이 생활해 가는데 필요에 따라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 자기 나름의 절대자에게 간구(干求)하는 기도를 자기입장에서만 드리는 형편을 보게 된다. 그 간구하는 자기처지에 따라 내용이나 방법으로 간구한다. 이는 간구하는 자의 욕구충족으로 자기 도취에 머무르는 일상을 알게 한다. 인간 사회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주어진 삶의 가치관, 입장, 처지가 있으며 생활 형편과 환경에 따라 행동하는 생활이 다르기에 사물을 보아서 알고 분별하는 견문과 학식에 따라 그 견식(見識)이 또 다르다. 이러한 각자의 입장이나 안목에서 간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물이 다 차이가 나고 구별이 있기에 천차만별인 각자 다른 간구가 된다. 이러한 간구는 자기생활의 필요와 탐욕의 수단으로 만 기도하는 사회생활에서 이기심만이 조장하는 삶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간구가 인간탐욕의 수단으로 조장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 보다 잘 산다고 한다. 풍요에 영화(榮華)를 누리고 있다. 물건과 돈의 풍요가 넘쳐 '경제 동물'이라는 이름을 갖기도 하며 경제제일주의로 삶을 영위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자칭 '부자 나라'라 하지만 그러나 '가난한 시민'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잘 산다'고 말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복지와 파괴된 자연 환경, 그리고 획일적인 금전만능주의, 빈부의 격차, 기득권의 횡포 등 결국 경쟁효율중심의 사회는 양극화로 갈등을 낳게 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 하는가? 그리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삶의 의미로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잘 산다는 것(well-being)'과 '잘 죽는다(Well dying)'는 것은 다르지 않고 같다. 이런 물음으로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스스로 찾아야 하는 물음의 대상은 바로 '나'요 바로 '지금'이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가 1945년 4월9일 히틀러의 암살음모에 해당되어 형장에서 자기의 삶과 죽음을 보여준 본 훼퍼 목사를 기억한다. 그가 사형집행을 눈 앞에 두고 마지막 죄수 복을 벗기 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온전히 하나님께 자기 삶을 맡기는 모습에서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을 배운다. 한 목숨 하나님께 바치는 삶의 순간은 이 '한 목숨'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게 하고 산다는 것은 생명이 한 목숨으로 끝까지 '다' 하는 것을 알게 한다.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단 한번밖에 삶은 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오직 당신뿐으로 당신의 것임을 알게 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물질적인 풍요와 보이는 겉만을 쫓는 사람들은 참된 삶의 의미와 선택이 물질의 풍요와 소유로만 다하고 살아간다.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만나 당신의 소원을 말하라 하자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지금 비켜 주라'는 말은 익히 잘 아는 말이다. 평생 자루 하나만을 가지고 통속에서 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할까? 인간은 모두 잘 살기를 원한다. 잘 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잘 죽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내용은 사람의 필요와 간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의 내용은 1) 육신을 위한 기도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영혼을 위한 기도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3)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기도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4) 사탄과 죄에서 해방되는 기도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등 이다. 이 주기도문은 삶을 살기 위한 필요와 소유만으로 살려고 바둥대는 우리의 삶에서 '내가 누구인가?'로 자기 본래의 정체(Identity)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정체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간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며 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기도는 하루의 삶에 일상의 영성이다. 일상의 영성은 일용할 양식과 같다.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한 영성, 늘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영성, 매일 만나는 이웃,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 충실한 영성을 말한다. 신앙은 어떤 기적이나 자기의 욕구충족에 의존하지 않는다. 날마다 밥을 먹듯이 물을 마시듯이 공기를 호흡하며 순간순간 일상의 삶을 '지금' 중요하게 여기고 사는 삶은 지금 하늘 공기 마시고 살아 숨쉬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약식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하나님 품 안에서 올바로 살기 위한 마음의 양식인 말씀으로 살게 한다. 그리스도교의 기도의 기초는 '주님의 기도'에 기초한다. 그 중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고 넉넉한 몫을 받기 원하는 분배정의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이는 주기도문 전반부에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뜻 사이를 전제하고 후반부 일용할 양식, 빚, 시험(유혹) 사이로 예수 당시 정치, 경제, 사회, 신앙 등 사회적 상황을 보면서 뜻이 담긴 기도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하여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있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시험에 들고 함정에 빠지게 되고 어리석은 일을 하다가 결국 자신을 망치고 구덩이에 떨어진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이다. 돈을 더 많이 얻으려다가 진실한 믿음에서 떠나고 오히려 더 큰 근심과 고통만 당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잠언30장의 작가이며 편집한 아굴(Agur)은 전통적으로 지혜의 사람으로 자기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기도에서 ['나로 하여금 허탄함과 거짓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고 또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고 기도 한다. 그 이유로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고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라']고 한 아굴의 기도에 유의한다. 그리스도인의 간구는 일상의 영성으로 지금 간구하는 기도를 알게 한다. 그 일상의 영성은 오직 일용할 양식이다. 주님! "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아 멘.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가는 세월 오는 때
전도서3:1-22, 에베소서5:15-17, 골로새서4:5
2012. 5. 13.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성서의 말씀은 "가는 세월 오는 때"를 알게 한다. 인생의 삶은 마음 가는 곳에 몸이 온다는 삶으로 생활의 그 이치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가는 세월 따라 사는 삶의 소중한 선물은 추억이다. 추억은 삶의 흔적이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면 희망, 기쁨, 실망, 슬픔, 그리움, 기다림, 깨달음, 아픔, 등의 마음을 추상(追想)하게 한다.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가운데 삶은 짙어진다. 가는 세월 따라 사는 삶은 흘러가는 시간을 통하여 그때 그때의 지냈던 형편이나 사정을 알게 하며 지내온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흘러갔구나 하는 기억으로 '가는 세월'을 알게 한다면 '오는 때'는 때가 차면 하나님나라가 닥쳐오는 도래(到來)를 알게 한다. 본문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함이다. "가는 세월 오는 때"를 아는 것은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최고의 걸작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의 소중한 추억만 그리며 후회 하고 살려 한다. '세월을 아끼라' 하심의 의미에서 '아끼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redemption救贖) 곧 죄 사함을 받았다(엡1:7)는 뜻으로 '아끼라'는 곧 '구속'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하여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라(救贖)" 라는 '아끼라'는 본문의 의미는 '세월을 구속하라'. '세월을 구원 시켜라'. '시간을 구원시켜라'. '세월을 저축하여 바르게 행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된다. 그리하여 인생의 삶은 마음 가는 곳에 몸이 온다는 것을 알게 한다. 몸은 마음에서 움직이며 행동한다. 시간에서 인생의 삶을 구원시키는 것은 때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때가 차면 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이 와 있다. 4계절은 때를 맞춰 인생의 삶에서 철을 알게 한다.그리하여 '때가 악하다'는 말은 철이 없다는 말인 것이다. 여기에 성서의 전도자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한다. 그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이 때를 알게 한다. 세월을 자기 경험, 체험, 자기 삶의 방법으로 세월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과거의 자기 소중한 추억만 그리며 권장하려 한다. 그러나 삶의 질은 언제나 현재와 상관한다. 그 예로써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목적지에 이르러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마음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이라야 풍성하고 그 여정(旅程)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을 알게 한다. 마치 소중한 사람, 소중한 일은 시간을 통하여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로 삶의 이야기가 된다. 흔히 사람들이 막연하게 어느 때가 오면 약속한 일들이 막연한 미래가 오리라 하고 기대하지만 그 때 가서 오늘 우리들 누구에게도 내일이 여기 오늘 지금처럼 보장이 된다는 그 형편이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삶은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되어 있다. 지금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지금'을 사는 삶의 지혜를 알게 하는 것이다. 삶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항상 무겁다. 그리하여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음을 알게 한다. 그 때를 알려면 주어진 삶의 깊은 곳에 넓은 눈으로 낮과 밤을 흐르는 때처럼 밝음과 어둠의 시간을 응시하고 길고 넓은 공간을 넘어 저 곳의 피안(彼岸)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가는 세월'은 삶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는 때'는 아침이면 변함없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밤을 맞는다. 이를 천문학적 시간이해로는 지구가 자전하여 태양이 도는 관계로 알고 생물학적인 시간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나이 드는 것으로 나이 먹었다고도 한다. 인생의 삶은 살아가는 세월도 알아야 하지만 오는 때도 알아야 한다. 세월은 시간의 삶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 삶의 시간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제한된 삶을 알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영원무궁하다. 우리가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나의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보라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로다'고 한다. (고후6:2).
인생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에서 살아간다. 여기에 성서가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 는 말은 반드시 까닭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 말에서 "때문"이라는 낱말은 의존명사로서 쓰인다. 즉 어떤 말 뒤에 쓰여 그 말이 가리키는 사물이 다른 말로 가리키는 일의 '때'를 '까닭이나 원인' 임을 나타낸다고 하여 '때'는 모든 만사의 원인이 되는 그 이유를 알게 한다. 이 "때문"이라는 말을 우리나라 국어사전의 가리킴으로 그 뜻을 확실히 한다. 그 '때문'이라는 이유의 의미는 '때'와 상관한다는 의미로 '때문'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성서의 전도자는 때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가리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고 함을 말 한다.
여기서 두 본문인 에베소서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시며 또 골로새서는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하심을 알게 한다.
'세월을 아끼라' 함은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삶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한다. 시간에서 삶을 보면 시간이 간다는 것으로 세월을 알게 한다. 나만 가는 것이 아니고 너도 가고 모두가 다 간다는 것이다. 시계에는 총 세 개의 시간, 분, 초침이 있다. 어떤 것은 아주 빨리 가고 어떤 것은 느릿느릿하게 가고 또 어떤 것은 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천천히 간다. 이 침들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치며 결국 처음에 출발한 곳을 향해 상하로 끊임없이 가는 것만으로 보게 한다. 시간은 만든 이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건가? 하는 물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그 분이 계신 삶의 본향을 가기 위해 구속의 길을 가는 삶의 여정에서 세월을 사는 것이다. 이 시간이 도래했을 때 그 시간에 절선(切線 at hand)하는 것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의 관계에서 이 사이(間)를 가리키는 間을 가지고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으로 천지인(天地人)관계 맺어짐을 알게 하며 피차간(彼此間)에 서로의 사이가 "가 는 세월 오는 때"를 알아 좋은 관계(間 사이)를 알게 하는 것이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