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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시 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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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인사문화
이사야40:1-5,마태복음6:19-34
2019년 2월 3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2019년 2월5일은 “기해년”으로 한 해를 맞는 설날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서로 인사를 한다. 흔히 새해를 기원하는 인사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말로 감당하지 못 할 인사를 매년 되풀이 하고 있다. ‘복’이라는 말이 습관처럼 기원 인사를 드린다. 이러한 인사 의도에는 물질의 풍요를 담고 있음에 주의를 살피게 된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각자 직업에 따라 물질의 풍요에만 그 의미가 담겨 있음을 목격하게 한다. ‘복’이란 물질의 풍요적인 의미가 설날을 맞아 기원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의 의미쯤은 알고 인사해야 한다. 옛날에는 복을 얻기 위해 그 행위로 악귀를 쫓는 축귀 행위로 부적이나 또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창살을 두드려 잡귀를 문 밖으로 내쫓는 민간 신앙으로 표현되어 성공제, 기은제, 고사, 굿 등으로 표현되어 왔음에 기인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복행위는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복을 비는 행위는 가신(집의 신)이나 비는 대상에 따라 비는 무속의 일종으로 실행되어 왔기에 복을 기원하는 행위에 따른 잘못된 인사문화로 기복신앙에 기인됨을 알게 한다. 우리 조선 후기에 와서 이러한 기복행위는 혼란한 사회 상황 속에서 복에 대한 갈망은 각종 신종교 발생의 배경이 되어 외래 종교가 유입되더라도 민간에서는 이를 기복적인 성격으로 변형시켜 흡수한 현상으로 필히 전래 내려 온 복에 치중함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사리게 된 것은 경제난의 근원을 살피게 되면 경제는 성장 하는데 그 밑바탕에는 국민들의 생활이 개선되어야 함을 알게 한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소유에 대한 세 가지를 알게 한다. 첫째는 모든 것은 다 창조자 하느님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신앙을 알아야 한다. 이세상의 모든 것은 사람의 것이 아니고 창조자 하느님의 것이라는 뜻을 따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람은 물건보다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물건으로 다루어 이용가치로 사용해서는 아니 됨을 알게 한다. 세 번째는 재물은 종속적인 선이지 최상의 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돈을 자기 사욕을 위해 쓸 때 나쁜 것이요 남의 어려움을 위해 쓸 때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재물을 가진 자는 책임이 크다. 자기 뜻대로 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쓰여야 함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성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신다.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으며 송구영신의 인사를 나눌 때 성서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무슨 복을 많이 받으라”는지, 가치 없는 삶의 인사로 한 해의 삶을 기원하는 지 부끄럽게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는 것은 물론 인간이 행복하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는 알아야 한다. 다만 인간이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하다. 그러한 삶의 의지와 정열은 인간 삶의 역사와 문명과 산업사회 발전을 일구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 행복이며 무엇이 생명으로 존재의 가치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다는 점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살피게 된 것은 성서의 구약에 드러난 창세기의 고대인들이 삶을 살아가는 양식대로 자기 삶의 자리에 1바벨탑으로 쌓아가며 자기 소유물을 쌓아 가는 것으로 자기 삶의 자리를 두려고 한 점을 알게 함에 주의를 가진다. 이는 곧 인간은 한 생명으로 삶을 영위 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사실은 인간은 한 생명으로 한 세상을 산다는 전제를 알게 함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한 생명으로 한 삶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라”
우리 그리스도교는 물질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 물질 사이에 올바로 세우라는 것이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그리스도의 사람
시편130편 에베소서1:7
2019년 1월 27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하늘의 창조자에게서 생겨난 생명은 그에 따른 상응한 원리에 의해 그 생명을 유지해 간다. 그러므로 생명의 특성은 첫째, 무질서한 세계는 더욱 혼란한 상태로 되려는 경향이 있지만, 생명은 정돈되고 조직화되려는 경향이 있다. 둘째, 생명체는 환경에서 화학물질과 에너지를 얻어 자신의 성장과 유지에 이용한다. 셋째, 복제에 의해 자신의 유전암호를 다음 세대로 전달한다. 넷째, 생명체는 환경의 특성을 감지하여 반응한다. 다섯째,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여 이로운 방향으로 자신을 조절하여 적응한다. 여섯째, 항상성이라는 안정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생명은 물리적·화학적으로 일정해지려는 경향이 있고 민감성과 반응의 복잡한 체제를 통해 유지된다. 이렇게 모든 생물체는 물과 광물질 외에 단백질·탄수화물 지질 혹은 지방과 같은 유기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또 핵산·호르몬·비타민 등도 중요한 구성성분을 이룬다고 한다. 여기서 빗대어 보면 숙명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신화로 보면 게르만 신화나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볼 수 있다. 이같이 미개인이나 고대 민족에게는 운명의 힘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소박한 신화는 원시 공동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의 독립이 자각될 때에는 소박한 신앙은 철학 또는 신학으로 승화한다. 여기서 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구원함을 받는 의미로 생명을 되찾는 창조자의 은총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으로 믿고 그 삶을 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이는 곧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소속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가 곧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다. 자기 욕심이나 생각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대로 산다는 삶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람”은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어둠을 진리의 빛으로 정복하는 봉사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생명 되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인 이란? 사랑의 근본이신 하느님처럼 당신의 아들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인류구원을 위해 화목제물로 죄악의 세상에 보내심 같이 한 알의 희생적 밀알이 되는 그리스도인임을 믿어야 한다. 이가 곧 “그리스도의 사람”이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느님과 에덴에서 약속을 어긴 죄로 인하여 하느님과 원수 된 인간관계의 담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무너뜨리기 위하여 십자가의 헌신을 통하여 이웃에게 화평의 화해로 그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는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 여기에 용기를 펼치는 정의적인 용기를 남기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하며 또한 ‘그리스도 인’이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돌보는 돌봄이요 섬김의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곧 구원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한다. 구원자의 삶이 곧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리스도 신학에서는 구원이 아무 대가 없이 주어지며 그리스 안에서 먼저 사랑을 베푼 하느님에게 믿음과 예배와 새로운 삶으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해 온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분명하게 구원이 좀 더 제한된 배경을 가진다. 신약 오늘 본문 에베소서1:7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함에 유의 하며 이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2019.01.18 10: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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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창세기 10:5, 20, 31.마태복음25:31-46
2019년 1월 20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민족의식은 한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민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민족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 내지 의식으로서 일반적으로 집단의식 혹은 사회의식이라고 한다. 민족은 고도의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적 성격을 갖춘 사회집단이기 때문에 다른 집단과는 다르다는 강한 동류의식을 갖고 있다. 민족은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면서 서서히 그 집단적 확대와 통일을 실현했으며 대민족으로서 명확한 민족의식(우리들의 집단이라는 자기인식)을 갖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이다. 이 같은 민족의식이 싹트게 된 외형적인 조건으로서는 중세 말기 이후 진전된 상품생산의 교통과 발달, 국왕의 절대적인 왕권확립, 국어의 성립, 민족 내부의 전투행위 금지, 가톨릭교회의 분열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민족 구성원 상호간에 전체적인 접촉이 촉진되어 집단적 협동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그 결과 능동적인 민족적 자의식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 같은 민족의식은 자기 민족이 갖고 있는 독자성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자기 민족의 역사적 전통에 긍지를 갖고 나아가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명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족의식에 합리적·사상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애국사상의 체계화이며 이것이 그대로 민족주의와 연결된다. 과거 지나 온 우리 민족은 해방에 앞서 1943년 11월 앞서 제 2차 세계대전 중인 미국, 영국, 중국의 3 거두가 카이로에 모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킨다는 준비가 되어 확인되어 조선을 독립시킨다고 확인이 되어 오다가 그 기간 동안 우리민족의 항일 투쟁과 여기에 세계 민족의 관심에 호응을 받으며 1945년8.15년 해방과 더불어 1945년 12월5일 미, 영, 소, 삼국 외상들이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패전국 일본의 제반 문제들을 논의 하면서 또한 조선 독립에 대한 문제들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조선독립에 대한 구체적 제반 문제 해결과 한국의 민주주의적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한국을 최장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의 신탁통치하에 두자고 논의하는 과정과 그 절차를 알게 한다. 그 리고 그 준비를 위하여 미국과 소련의 현지 주둔군 사령관은 2주일 이내에 미소공동위원회를 결성하고 이를 시행하여 한 민족의 운명은 하나의 민족이 두 민족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게 한다. 
현대에 들어와 민족 개념은 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국가의 성립과 함께 국민문화와 국민성이 발달하면서 국민이 바로 민족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다민족 국가에서는 국민과 민족이 엄격하게 구별되기도 한다. 어쨌든 민족이라는 개념은 민족 자신에 의한 자각, 또는 집단에 의한 인식(민족의식)을 계기로 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이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현실에서 활성화되는 것은 외부와의 몇 가지 연관관계를 통하여 민족 자신이 자기의 존재(또는 특수성) 혹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민족의식을 각성하게 될 때 가능해진다. 민족의 경계설정에 사용되는 지표는 사회생활 전반에 걸치는 것도 있고 사회생활의 특정 분야에 한정되는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민족 범주와의 사이에서 인원의 개별적인 이동·접촉·혼인·동화 등의 현상이 생겨 민족성의 지표가 되는 문화특징 자체가 변용된다는 것이다. 민족 범주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구성원과 비구성원 사이의 이분화 작용이 계속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근대 민족주의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에서 처음 발현되었다. 17세기 영국의 민족주의는 후대에 나타난 민족주의는 세속적 민족주의보다 종교적인 성격이 짙었으며 상업에 종사하는 중산계층의 성장에 호응하는 것이었다. 존 로크는 영국 민족주의의 정치철학을 집대성했고 18세기 미국 및 프랑스 민족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민족주의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을 기하여 만개하였다. 특히 18세기로 접어들면서 교육은 오직 모국어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8세기가 끝날 무렵에서는 교육 및 공공생활의 민족주의화 경향은 정치적 충성의 범위를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나아갔다.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민족감정의 발흥으로 인해 첫째,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지방 분권주의를 타파하고 영토 확장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가를 탄생시켰으며, 둘째, 생활 및 교육의 세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국어가 유행하고 교회와 종단의 구속력이 약해졌으며, 셋째, 상업이 발전됨으로써 중산 시민계층과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창출해냈다. 정치적·경제적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영토적 통일국가에는 중세의 종교운동에 견줄 수 있는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고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미했다. 한편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고 있던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혁명적 정신의 기수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식민지 세계의 전역에 퍼져나갔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고전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었다. 고전적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세력의 억압에 항거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민족주의였으므로 한결같이 반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식민지 민족주의의 경우는 보다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제국주의의 단계로 접어든 시기에 제국주의의 압제로 신음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므로 대개 식민지 민족주의에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과거 일제하에서 일어났던 한국의 민족독립운동이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말에 ‘겨레’라는 의미는 한 조상의 피를 이어 받은 자손들, 동포, 민족을 말하며 ‘배달겨레’라고도 한다. 이는 “우리 겨레”를 옛스럽게 이르는 말로 쓰여 “배달민족”이라 함에 주목한다. 오늘의 민족의 개념은 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일부 ‘다 민족국가’에서는 국민과 민족이 구별되기도 함을 본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민족 자신에 의한 자각, 또한 집단의식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사실로 ‘민족’은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러 점차로 서서히 그 집단의 확대와 통일을 실현했으며 대민족으로서 명확한 민족의식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 이 같은 외형적인 조건으로 중세 말기 이후 상품 생산의 편리한 교통과 국왕으로 부터 절대적인 왕권 확립과 가톨릭 등의 분열 등으로 사회적인 상황을 알게 하지만 민족 구성원 상호간에 전체적인 접촉이 촉진되어 집단적인 협동이 강화되었기에 그 결과 능동적인 자의식이 성립됨을 알게 한다. 이러한 민족의식에서 합리적.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애국심의 발로이며 애국사상의 체계화이며 이는 곧 민족주의임도 알게 한다. 여기서 알게 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 민족의 개념은 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여기서 분명하게 아는 것은 공동사회(게마인 샤프트) 적 성격을 갖춘 사회 집단이기에 다른 집단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강한 동료의식을 갖는 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옛 어른들의 삶은 민족적 의식에서 즉 고대나 중세에서 보면 민족의식이 살아났음을 알게 하는 것은 능동적인 자의식에서 ‘민족적 자의식’이 살아났음을 알게 한다. 이를 성서에서도 보면 구원의 역사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상 만민 중에서 선택하여 세우심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한다. 구약의 히브리서에서도 “백성”, “민족”으로 표현함의 그 의미를 알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을 민족으로 살펴 ‘구원의 역사’를 보이심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며 어디서부터 해야 함을 알게 한다. 오늘의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먼저 나 부터(내 민족)을 우선하여 “민족의 사랑”으로 삶의 구원을 우선해야 한다. 여기에 민족의 통일도, 독립도, 삶의 향상도, 발전도 있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