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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시 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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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맞는 민족
이사야53:1- 8,마태복음8:8-20
2019년 2월 24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1919년 3.1절의 의미는 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이자 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중의 생존권 수호투쟁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운동경험이 하나로 수렴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 식민지에서는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의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으로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민족의 해방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일차적으로는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인하여 독립 쟁취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결국 전국적으로 운동을 지도할 조직이 없었다는 점, 이 운동을 처음 준비했던 33인이 일본·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가 독립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타협적 의존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민중의 투쟁을 끝까지 이끌어가지 못했던 점은 지금에서 생각하면 운동과정에서 이러한 민족해방운동에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이것은 오늘에도 타에 의존한 민족의 단결은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해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3·1운동의 과정에서 끝까지 비타협적인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 민족의 민중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민족이 해방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민중의 민족적·계급적 각성도 촉진되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는 오늘의 3.1절의 회상은 우리 민족이 다 함께 민중의 힘을 결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독립운동과 그 운동을 민족이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의식을 고취해야 할 지도할 민족공동체적 통일의식이 필요함을 가지게 한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3.1절에 민족운동에 앞장서고 많은 교회가 핍박을 당했다면 오늘의 우리민족 앞에 그리스도인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진리는 인간 이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는 하늘의 뜻 아래서 십자가의 길을 터득하게 한다. 여기서 곧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서 태어나 살면서 삶을 친히 보여 주셨다. 마구간에 태어나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다니시면서 목수의 아들로 집안의 가난을 목수의 일을 돌보며 또한 공동체의 공생애 3년간 시험을 겪으시며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심은 먼저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극복하는 삶의 정황(형편)을 알게 하심에서 깨닫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보시며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우선인 냥 그렇게 알고 사려고 하는 이들에게 이것만이 우선이 아님을 예수께서는 삶의 ‘십자가의 길’을 친히 보이시는 삶으로 보여 이를 깨닫게 한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사시면서 하늘아버지 하느님을 찾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하심을 복음서는 우리에게 이를 알게 함에 주목한다. 예수께서는 땅의 사람들에게 삶에서 나타난 삶의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는 의지의 결단의 힘은 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세상살이에 보이시면서 자기 스스로가 친히 해결하며 그 태도로 십자가를 지신다. 이 ‘십자가 삶을 예수께서는 친히 일으켜 주심에 주목하게 한다. “모든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태어나고 또한 때를 따라 고난을 통하여 한 생명의 씨를 머금고 나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터득하게 한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은 그 생명의 힘으로 자라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약동을 본다. 생명과 역경(고난)은 필히 하나이다. 흔히 생명의 약동은 자라며 성장하고 깊고 어려운 역경의 삶을 보며 성장하고 성숙함을 알게 한다. 이제 한 민족이 두 민족으로 살아가면 두 민족은 한 생명이기에 둘이 될 수 없듯이 [통일] 하여야 한 생명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3.1 절 기념주일”을 맞아 한국교회는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100년의 3.1절을 맞아 보다 성숙된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3.1절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같은 민족의 하나 되는 민족의 통일과 생명 의식을 가지고 어려운 삶을 극복하는 의미가 있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화해하는 민족
이사야51:7,레위기25:10,마태복음5:23-24
2019년 2월 17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초기 한국교회는 민족의 설음과 아픔에 허덕이면서 세계 YMCA와 한국교회 선교활동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시민 단체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 그 당시 시대정신을 수용하고 시대와 사회 현실을 감안하여 교회가 처한 현실의 문제 앞에서 개혁과 갱신을 하기 위해 YMCA 운동에 주도권을 행사하여 여기에 교회는 선교의 자리를 터득하여 기독교시민운동 단체로서 교회가 설 자리를 찾아 당시 민족 운동이나 문화운동에 이르기 까지 장래를 책임질 수많은 학생들의 그룹운동을 일으켜 당시 한국교회의 선교 일환으로 YMCA운동하였음을 알게 한다. 특히 YMCA가 다원주의 현대사회 속에서 청소년의 활동 공간으로 장소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정체성 확립이나 그 방향 진로에 까지 영향이 사실로 그 성과는 대단했다. 특히 사회적으로는 그 운동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시대정신을 수용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YMCA가 단순한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교회가 또한 경영, 유지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여 그 정체성 확립과 교회 선교의 장을 넓혀 활동 공간을 서울 전역에 넓혀 나중에는 한국사회에 많은 역할을 감당해 왔음을 안다. 민족주의와 정체성확립, 시민의식 계도, 청소년 문화 활동, 공정선거 캠페인, 향락문화 추방 캠페인, 환경 보전운동 캠페인, 시민정신, 문화질서 캠페인, 이러한 YMCA 운동은 기독시민운동의 역할로 하느님 나라 건설이라는 막대한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음을 한국교회는 알아야 한다. 이러한 선교의 자리에서 살펴보면 지금 한국교회의 선교 자리와 그 의미를 알도록 깨우쳐야 한다. 한편 근대 민족주의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에서 처음 발현되었다. 17세기 영국의 민족주의는 후대에 나타난 세속적 민족주의보다 종교적인 성격이 짙었으며 상업에 종사하는 중산계층의 성장에 호응하는 것이었다. 존 로크는 영국 민족주의의 정치철학을 집대성했고 18세기 미국 및 프랑스 민족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에서는 교육 및 공공생활의 민족주의화 경향은 정치적 충성의 범위를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나아갔다.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민족감정의 발흥으로 인해 첫째,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지방 분권주의를 타파하고 영토 확장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가를 탄생시켰으며, 둘째, 생활 및 교육의 세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국어가 유행하고 교회와 종단의 구속력이 약해졌으며, 셋째, 상업이 발전됨으로써 중산 시민계층과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창출해냈다. 정치적·경제적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영토적 통일국가에는 중세의 종교운동에 견줄 수 있는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고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미했다. 한편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고 있던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혁명적 정신의 기수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식민지 세계의 전역에 퍼져나갔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고전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었다. 고전적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세력의 억압에 항거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민족주의였으므로 한결같이 반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식민지 민족주의의 경우는 보다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제국주의의 단계로 접어든 시기에 제국주의의 압제로 신음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므로 대개 식민지 민족주의에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과거 일제하에서 일어났던 한국의 민족독립운동이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여기에 우리민족은 통일에 앞서 하느님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분열시켜 노예로 만든 악의 근본이 조국과 민족의 분단에 있음을 한국 교회는 확인하고 통회자복하며 회개 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생각하며 이제는 한국 교회가 민족 분단과 동족상잔의 고착화에 대하여 서로의 사이를 통감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서서 먼저 하느님께 회개하고 이제는 서로 용서의 기도로 “화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과 북은 서로의 이 사실을 통감하고 화해의 짐을 지고, 용서의 기도를 하느님께 드려야 한다. ‘화해’는 사람의 마음을 내시고 거두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만 가능하기에 우리 ‘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만 가능함에 서로 용서하고 회개하는 한국 교회가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5:23-24의 말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주현절 여섯째 주일을 맞으며
말라기 4:2, 요한복음2:1-25
2019년 2월 10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주후236년경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 하실 때 태양을 만든 한 주간의 넷째 날에 예수님이 태어 나셨다고 하여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 예수는 ‘의로운 해’(태양)로 태어났기에 세상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여 당시 로마 달력에는 춘분이 3월25일 이었음으로 예수님의 생일이 당시 3월28일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을 한 해의 12월25일 이라고 지키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354년에 로마에서 기록한 문헌에 그렇게 기재된 시대적인 배경을 논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예컨대 그 문헌에서 보면 순교자들의 매장에 관한 기록이 나오게 되면서 예수가 12월 25일에 탄생 기록과 순교자들의 기념행사를 논의해 오다가 336년부터 매년 이 날을 잡아 진행해 내려온 것으로 인정하고 교회력의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게 한다. 또한 이러한 전래로 내려 온 두 배경으로 그 하나는 로마가 기념하고 있었던 태양숭배의식과 관련하여 성탄절이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초로 하여 성탄절의 날짜를 알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옛 부터 교회력에 맞추어 예배드려져야 함에서 믿음의 선진들의 구원의 믿음을 살피게 된다. 주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축하하고 (요한복음 2:1-11)믿음을 행함에 있어 강조함과 시간으로 주어진 때를 따라 삶으로 살아가는 하늘 아버지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의 그 중심으로 때를 따라 그 경우로 믿음의 생활을 알게 하는 오늘날 드려지는 교회의 예배를 살피게 된다. 이렇게 주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축하하고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기적 행하심을 기념하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 사람으로 태어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동녘에서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라기4: 2).”
세계적으로 많은 예배신학자들은 성탄절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을 위해 태어났다는 구원의 의미로 삶과 죽음의 주체가 되셨음을 고백하며 예배로 알리려 함을 신앙으로 감당케 하는 주현절에 그 의미를 두게 한다. 오늘의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교회’ 주일 예배는 교회력에 준한 주현절 예배로 드린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