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배실
  2. 금주의 말씀
  3. 인터넷 설교
  4. 배안용 담임목사
  5. 배성산 명예목사

    전체: 847335  오늘: 21  어제: 128

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시 102:18)
  • Skin Info
  • Tag list
예수 부활의 의미
시편49:8.잠언1:19,요한복음11:25-26
2019년 4월 21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이렇게 그가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죽음·악마'를 물리친 그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부활절 또는 부활제라고 하는데, 이날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요축일이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여자 제자 몇몇이 예수의 무덤으로 갔는데, 이 무덤은 산헤드린(유대인의 최고 종교법정)의 일원이며 예수의 은밀한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의 동산에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없음을 알렸다. 나중에 여러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보았고, 심지어 그가 문이 잠긴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보았다. 또한 제자들은 갈릴리에서도 그를 보았다(예수가 나타난 장소와 시간에 관해서는 복음서마다 다름). 복음서 외에 부활한 주(主)가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다가 승천한 것을 언급한 기록은 〈사도행전〉에만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심판 전에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신앙은 누구도 실제로 보지 못했고, 이후 직접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던 이도 고작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예수의 육신이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사실과 그 후에 예수가 자신을 방문했다는 사도들의 확신은 가히 세계를 바꿔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 명백하게 불가능한 사건이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점에 대해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을 품었으며, 이는 그들의 도덕, 문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에 극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속주인 유다에서 카리스마 있는 치유자이자 떠도는 계시록 설교가였던 예수는, 전통적인 많은 관습을 고의로 조롱하고 유대주의의 기반인 모세의 율법 대신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대인의 종교적 제도를 전복시켰다. 그가 유월절 축제를 위해(날짜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기 30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것은 자신의 운명과 대면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고 해석해 왔다. 산헤드린(고대 예루살렘의 유대인 최고 의회이자 법원과 대제사장이 선고를 내리고, 로마 총독의 도움을 빌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한 신도가 그를 개인 무덤에 묻었고 로마 군인들이 경비를 섰는데, 사흘 후 그의 유해는 사라졌다. 그날, 그리고 이후 몇 달간 여러 차례에 걸쳐, 그의 친구들은 살아 있는 모습의 예수를 목격했다고 확신했다. 첫 목격자는 막달라 마리아였고, 이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다른 곳에서 예수를 보았다. 그 결과,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의 가르침과 죽음을 재평가했고, 그 안에서 비길 데 없이 강력하고 긍정적이며 변화를 낳는, 하느님이 내린 메시지를 보았다. 오늘날까지 그 메시지는 온 세계의 사람들을 강하게 이끌고 있다.
예수 부활에 관한 기록은 신약성서 4복음서 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초대 교회의 보편적 확신과 합의를 표현하는 다양한 신학적 표현들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발견해서 알수 있음을 믿음으로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그래서 그 이후 예수 승천하심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우리도 하느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고 사랑으로 이를 감수하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의미”는 죽음 이상의 생명으로 사랑을 강조함에 그 의미를 두고 있음에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종려주일을 맞으며
이사야58:3-12, 전도서5:10-20
2019년 4월 14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오늘 주일은 교회력에 의하면 “종려주일”이다. 종려나무를 신성시하는 고대 근동에서 부터 알게 되어 지는데 특히 조각미술에서 알게 한다. 이는 원주형의 인상이나 다른 형태의 미술품에서 생명의 나무로 인식하여 각인의 인상에 자주 인식하는 인상을 대대로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드보라의 종려나무’라는 (사사기4:5) 신성한 나무로 이해함에 그 이해하는 풍습에서이기도 하다. 예컨대 솔로몬 성전의 벽돌, 문들, 손잡이 등 신선한 나무로 사용되고 있음에 그 의미를 두고 있음이 그 근거가 되기도 하다. (왕상6:29, 32,35:, 7:36) 그리고 에스겔의 환상의 성전에 (겔40:16, 22, 26, 31,/34,37;, 41:-18-20, 25-26) 이와 같이 종려나무에 대한 이해도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배우게 한다. 종려나무에 나타난 기사의 흔적은 이와 같이 종려의 성읍에 대하여 어떤 지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종려나무의 성읍이라는 곳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에 눈을 뜨게 함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수난절을 기념하는 성일에 의미를 더 하기위해 4세기 예루살렘에서 행해졌던 종려주일의 전례의식에 전하여 내려 온 전통의 예절에 따라 수난의 절기에 따라 행해진 사례로 고려하는 것이다. 종려주일 축제가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퍼져 내려온 지라 통으로 종려나무를 성별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렇게 예수 사순절의 그 의미에 사순 시기(영어: Lent)는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를 말한다. 사순절의 이름은 성서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40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나온 '테사라코스테'(그리스어: Τεσσαρακοστή)의 번역 단어이다. 재를 머리에 얹거나 이마에 바르며 죄를 통찰하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며, 부활절 전 40일(사순,四旬) 기간 동안 지킨다. 기독교에서 동방전통과 서방전통의 사순절의 차이가 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매주간 5일만을 기간으로 여기고, 토요일과 주일을 40일 날짜에 포함하지 않는다. 부활절 이전 8주간이 사순절이 된다. 서방 기독교인 천주교에서는 주일을 포함하여 사순 시기가 성주간 목요일까지이다. 40일 날수는 전례대혁 후에상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개신교에서는 주일을 제외하고 토요일을 포함한 40일을 사순절로 지킨다. 부활절 이전 6주와 4일이 사순절이 된다. 즉,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 주일을 제외시키고 날수를 세면 40일이 된다. 이날에는 금식 등의 자기 절제와 회개를 한다. 부활절 이전에 예수의 십자가상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절기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성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은 후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 받았던 사건을 떠올리기도 한다. 부활절 바로 전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종려주일 이후에는 성금요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함께하여 그리스도교에서는 사순절의 기간을 믿음으로 사는 삶에 그 의미를 가지다. 이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입성을 기념한 날로 부터 종려나무를 축복하고 행렬 의식을 행한다. 이러한 특별한 의식은 지금 전인 4세기 말엽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하여 와서 오늘의 예배에 그 성례로 지키게 되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이 의식이 행해짐으로 종려나무로 출발 했다가 다시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행적을 기리는 예로서 교회로 다시 돌아와 전례의 찬송으로 화답하며 전례로 돌아옴을 알게 한다. 이 행렬에 수반되는 전례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수난 당하심을 (마태26:36- 27: 54)을 중심으로 그 배경을 추모 드린다. 지금에 와서 거의 개신교는 여기에 의미를 갖고 수난과 그 사랑으로 십자가의 보혈의 의미를 세우며 옷깃을 여미고 수난절을 기념하고 그 의미로 감사하며 생명의 부활주일을 맞음에 지금 우리는 주목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사순절에 새기는 거듭남
로마서11:6, 요한3:3-7, 야고보2:18, 갈라디아6:14
2019년 4월 7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바울 선생의 믿음의 전 생활은 그의 믿음의 고백에서 ‘자신이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말함에 주목한다(고전2:1-2) 예수님의 지상의 삶 전부와 그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환히 밝혀 주심을 알게 한다. 하느님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은 사람이 영적 생명을 부여 받아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하기에 (요한복음1:13 )하느님께로서 난 자녀의 권세를 받음은 ‘거듭남’의 삶을 알게 한다. 그래서 위로부터 난 영적인 자들은 새 생명으로 다시 나게 하심은 사람은 비로소 영적 생명을 부여 받는 것이다. 여기서 아는 것은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 난자 즉 거듭난 자라야 “십자가 지는 복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을 지키며 부활절의 생명 된 희망을 찬양하며 찬송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교회는 사순절의 교회력에 따른 행사를 갖게 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스스로 고난을 당하신 십자가를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하심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하신다. 인간은 그 죄의 대가를 스스로 해결 할 능력이 없다. 그럼으로 십자가 사건을 용서함을 받은 믿음의 행세를 하며 그리스도인이라 믿음의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맞아 여러 가지 믿음의 감회를 가지고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사순절을 지키는 믿음에 골몰하는 반면에 삶의 거듭남을 강조함에 주목한다.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부활절 전까지 6주간 반 계속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한 것을 본떠서 일요일을 제외한 40일을 금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 8주 전부터 시작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금식 일에서 제외한다. 부활절 축제 전에 준비와 금식의 기간을 지킨 것은 사도시대부터였다. 이 기간은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시기였고, 죄인들에게는 참회의 기간이었다. 초기의 수세기 동안 금식규율은 엄격했으며, 동방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서방에서는 이 규율이 점차 완화되어 엄격한 금식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면제되어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만이 사순절 금식일로 지켜졌으나, 참회예절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영국성공회의 〈성공회 기도서〉는 사순절을 금식으로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루터교를 비롯한 개신교 교회에서 사순절은 다양한 예배와 전례로 지켜지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느님의 자기희생이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는 하느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이다. 이는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곧 공의와 사랑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항상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나 시행함을 믿게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를 잘 나타난 하느님이 행하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스스로 고난을 당하시고 삶에서 친히 그 아픔을 보여 주시는 놀라운 한 사건임을 친히 당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십자가 사건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삶으로 보여 주신 공의와 사랑의 사건임을 삶으로 보여 주신 관계를 믿게 한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 화목(Propitiation), 구속(Redempition), 칭의(Justification), 화해(Reconciliation)로 해석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것은 그 의미가 자신의 생명을 드러내어 인간과 그 모든 생명을 살려 구원했다는 지대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한다. 여기에서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은 구속의 의미로 오심을 믿게 하심을 우리는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곧 생명 안에 본체이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함을 깨닫게 함이다. 베드로 전서1장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로 된 것이니 하느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심을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의 그 의미는 단순한 외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면의 개조와 영적 재창조를 말함에 있음을 주목하게 한다. 결국 거듭남이란 생명의 본체요 근본인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새롭게 영적으로 태어나는 사순절이 되어야 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