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배실
  2. 금주의 말씀
  3. 인터넷 설교
  4. 배안용 담임목사
  5. 배성산 명예목사

    전체: 940393  오늘: 106  어제: 157

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시 102:18)
  • Skin Info
  • Tag list
구주로 오시네
이사야35:4,누가복음2:10-14
2018년 12월 23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메마른 광야 땅에 비가 와서 메마른 땅을 적시면 생명들이 살아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약동하는 생명들의 힘을 본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보고 오시는 하늘의 하느님을 알아서 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찬양한다. 이사야는 하느님이 그의 영광과 함께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젖을 것이며 그는 죽어가는 땅을 생명의 물로 촉촉이 살려 죽음을 삼켜 하늘의 영광을 보여 주심에 대한 찬양이 그의 믿음의 고백에서 이를 기뻐하고 찬양하며 이를 감사하며 기뻐하고 이를 믿음으로 고백함에 예의 주시 하게 하신다. 이는 ‘오시는 하느님의 구원’에 경험을 갖게 한다. ‘구주로 오시는 하느님’의 그 은혜에 대한 신앙의 예우를 다 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구주 예수의 탄생으로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맞는 교회력의 절기로 이를 대림시기, 대강절, 강림절로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신지도 2000년이 되셨다.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서 빈 구유 바닥에 눕혀 지내심을 안다. 마구간의 식구들로 상징되는 온 생물은 물론 구유로 상징되는 마구간 식구들에게 말없이 밑바닥이 되어 준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까지 하느님이 오시는 그 까닭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당시 낮은 이들로 여긴 들에 목동들에게 먼저 인사를 나누듯이 세상의 낮고 천한 밑바닥 인생들 ‘ 땅의 백성(암 하 아레츠)들과 함께 즐겨 먹고 마시기도 함을 알게 한다. 이는 맨바닥, 땅 바닥에 누워 오심의 의미를 알게 한다. 이 나눔의 완성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셔서 삶을 공유하신다. 생명은 생물로 만물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특성은 땅이 무질서하게 혼란한 상태로 되려는 경향이 있지만 생명은 정돈되고 조직화 되려는 경향이 있고 생명은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어 성장과 자기 유지에 이용하려 함을 이미 만물의 첫 창조하신 에덴에서 생명으로 삶의 의미를 보여 주심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으므로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신다고 한다 (창 2:9). 즉 에너지 ( Energy) 공급원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아담 하와가 하느님을 의존해야 삶을 구원할 수 있음을 함을 알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생명나무는 인간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느님을 인정하고, 다시 말하면 그 열매를 먹고 있는 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라는 증거를 알게 하신다. 인간은 하등의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과 기능과 능력들, 곧 이성, 선택의 능력, 지능 등을 가지고 하느님의 형상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동물들에 비하여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는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은 하느님의 뜻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만 구원의 삶을 살게 하신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께서 이 낮은 땅에 내려오심을 찬양하는 계절이다. 온통 이 지구 땅에 세상은 구주 오심의 의미는 잊어버리고 상관없는 축제에 빠져서 호화찬란한 네온사인과 흥청망청 축하연으로 들뜨고 있음을 본다. 그 옛날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하든 천사들이 온 누리의 백성들에게 감격에 찬 목소리로 ‘구주 탄생에 대한 찬양’ 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다는 소식이야말로 얼마나 기쁜 소식 인가! 생각하게 하는 크리스마스! 
아! 생명의 계절인가? 생각하게 한다. “Merry X-mas!”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아 멘.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2018.12.12 14:25:08
127
성육신 신앙
이사야63:7-9 요한복음1:1-15
2018년 12월 16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구주 오심의 달을 맞으며 하느님이 친히 사람으로 오시어 그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그 비유로 성육하심에 그 의미로 그 참된 삶을 요한복음서에 의해서 알게 하심은 하느님이 인간의 속성을 입고 하느님의 아들로 삼위일체의 제2격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에서 말한 절기를 맞게 한다.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은 예수 오심의 의미는 기다리며 맞는 교회력의 절기이며 이를 대림시기, 대강절, 강림절로도 부른다. 그 뜻은 ‘오다’(Adventus)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교회력이 대림절로 시작하기 때문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뜻도 있음을 부언한다.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서 빈 구유 바닥에 눕혀 지내심을 안다. 마구간의 식구들로 상징되는 온 생물은 물론 구유로 상징되는 마구간 식구들에게 말없이 밑바닥이 되어 준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까지 하느님이 오시는 그 까닭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당시 낮은 이들로 여긴 들에 목동들에게 먼저 인사를 나누듯이 세상의 낮고 천한 밑바닥 인생들 ‘ 땅의 백성(암 하 아레츠)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도 함을 알게 한다. 이는 맨바닥, 땅 바닥에 누워 오심의 의미를 알게 한다. 이 나눔의 완성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셔서 삶을 공유하신다. 생명은 생물로 만물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특성은 땅이 무질서하게 혼란한 상태로 되려는 경향이 있지만 생명은 정돈되고 조직화 되려는 경향이 있고 생명은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어 성장과 자기 유지에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생명은 자신의 유전 암호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여 이로운 방향으로 가려한다.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안정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하고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 이러한 생명의 특성을 고찰하면 인간 사회의 삶에서 삶의 구도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 이는 생명으로 오셔서 구원의 생명의 모습을 친히 견디어 가게 하신다. 그리하여 성서는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표현엔 인간의 본질, 곧 그의 근원과 성질과 운명으로 한 생명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타나고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이 그 생명을 이어 받은 것이요 스스로 존재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소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서로 보면 사람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생명이신 “하느님의 성품에 참여 하는 자”로 창조된 것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으므로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신다고 한다 (창 2:9). 즉 에너지 ( Energy) 공급원을 두신 것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아담 하와가 하느님을 의존해야 함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생명나무는 인간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느님을 인정하고, 다시 말하면 그 열매를 먹고 있는 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은 하등의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과 기능과 능력들, 곧 이성, 선택의 능력, 지능 등을 가지고 하느님의 형상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동물들에 비하여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는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은 하느님의 뜻과 아름답게 이 땅에서도 성육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느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이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으로 위격의 일치라고 언급되어 온 삶에서 인격적 일치로 구주 예수 안에서 연합되었음을 믿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삼위의 일치라고 언급 되어 온 인격적 일치(하나)로 예수 안에서 결합되어 두 본성이 인격적 일치로 그 정체로 이어오고 있음을 믿게 한다. 그리하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는 성부와 인격적으로 긴밀하게 연합해 왔으며 그가 복음을 선언 할 때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함에 유의하게 한다. 여기서 ‘성육신’은 본질상 하느님이고 하느님 (성부) 과 동등 하지만 조의 신분으로 나중에 하느님과의 그 관계는 하느님과의 자녀의 입장으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이를 관계하게 함에 유의한다. 여기서 이를 깨달아야 함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 중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여러 경향들이 있어 왔지만 이후의 신학에서 이를 바로 잡아 신학을 세우게 된 것은 칼케돈 공의회의에서 그 정의를 반영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가 그의 인성에 중요한 영향의 역할을 알아야 함을 정의하게 됨을 알게 한다. 이렇게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일치는 인류의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고 인간의 활동에 내재하는 잠재적인 선을 인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간 전체를 위한 은총이라 함을 구주 오심에 의미로 “성육신 신앙”으로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하심과 그 은총을 깨달아야 한다. 인카네이션(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의미는 하느님이 인간의 속성을 입고 하느님의 아들이요 삼위일체의 제2격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인간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그 의미를 깨우쳐야 한다. 그러므로 “성육신” 신앙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요한 믿음의 결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따라서 예수는 성부와 그 인격으로 긴밀하게 연합해 있으며 그가 복음으로 설교할 때는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함에 유의한다. 성육신(인카네이션)이라는 말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 안에서 삼위일체의2번째 위격인 신성과 인성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순간 또는 예수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그 일치의 항구적인 현실의 삶에서 그 품성이 나타난 삶의 현장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빛으로 오신 구세주 예수
창세기 1:1-5,8요한복음1:2-5,8:12-20
2018년 12월 9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그리스도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의 구주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에서 말한 절기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맞는 교회력에 의한 절기이며 이를 대림시기, 대강절, 강림절로도 부른다. 그 뜻은 ‘오다’(Adventus)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교회력이 대림절로 시작하기 때문에 한 해의 시작을 알게 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신지도 2000여년이 지나게 되었다. 예수께서 마구간에 당시 낮은 이들로 여긴 들에 목동들에게 먼저 인사를 나누듯이 세상의 낮고 천한 밑바닥 어두운 인생들 ‘ 땅의 백성(암 하 아레츠)들과 함께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심을 알게 한다. 이는 삶의 바탕에 같이 함으로 그 생활에서 자신의 삶의 전체의 자세를 표방하며 이를 친히 그 삶에 함께 하심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안정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하고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생명이빛의 특성을 고찰하면 할수록 그 삶의 빛을 알게 한다. 인간 사회의 삶에서 삶의 구도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 이는 생명으로 오셔서 구원의 빛으로 그 모습을 친히 견디어 가게 하신다. 그리하여 성서는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표현엔 인간의 본질, 곧 그의 근원과 성질과 운명으로 한 생명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타나기에 빛으로 그 삶의 자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이 그 빛을 이어 받은 것이요 스스로 존재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빛은 그 빛을 받은 모든 면은 그 빛에 의하여 나타내 보이게 되어 있다. 
본문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빛이다’라고 말하시면서 예수 자신의 성격을 10가지로 표현하고 …….그러므로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생명을 얻게 됨에 의미를 함축하게 알게 한다. 생명을 소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서로 보면 사람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생명이신 “ 하느님의 성품에 참여 하는 자”로 창조된 것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으므로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신다고 한다 (창 2:9). 즉 에너지 ( Energy) 공급원을 두신 것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아담 하와가 하느님을 의존해야 함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생명나무는 인간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느님을 인정하고, 다시 말하면 그 열매를 먹고 있는 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은 하등의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과 기능과 능력들, 곧 이성, 선택의 능력, 지능 등을 가지고 하느님의 형상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동물들에 비하여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는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은 하느님의 뜻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의 우리의 이 시대에서의 삶은 '빛'이 되는 "생명의 삶"이 필요하다. 하느님은 우리가 자력으로 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들어올 때 이루어진다. 그때서야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고 작정하신 모습대로 만들어진다. 충만하고 완전하고 온전하고 건강하여 속죄 받은 사람, 우리가 이런 것을 인식할 때 그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때 그것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될 것이다. “빛으로 오신 구세주 예수” 이렇게 새로운 삶의 탄생은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그 의미를 갖게 한다. 이러한 삶의 신앙생활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영원속의 참된 재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빛이 오심은 어두운 삶의 태도를 밝히심에 그 의미를 갖게 한다. 이러한 변화된 삶이 신앙이 된다. 빛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악과 무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가고 있는 어두운 빛을 잃은 인류의 삶 어두운 삶 속에서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들의 삶과 교훈을 통해서 썩어져 가는 인류를 밝은 빛의 은총으로 변화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교회의 큰 직임을 맡은 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이러한 빛의 은총이 없다면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교훈이나 수단도 이는 참다운 빛 외에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빛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밝히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빛을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과 이웃에게 비추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들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추구함으로서 어둠에 놓인 세상 사람들이 완전한 빛을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빛의 근원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다만 그 빛을 받아 세상에 그대로 반영해 주는 반사체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언제나 빛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집중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구세주탄생을 맞아 이 믿음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영원속의 참된 재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빛의 역할이 얼마나 귀중함을 알게 한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요1:8)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