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ogia Fidei 신앙의 유비
마태복음서 25:14, 베드로전서 4:10~11, 창세기 9:7, 시편 16
2021년 10월 17일_배안용 목사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해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것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자기 종에게 노동자 15년 품삯에 해당하는 달란트를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씩 종들에게 나누어 주고 관리하게 하였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게 된 사람들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돈을 땅에 묻어 놓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맡긴 재산에 대한 셈을 하는데, 두 배의 수익을 올린 사람에게는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마 25:21; 23)”하고 칭찬했으나, 원금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는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마 25:30)”이라고 꾸짖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떤 선택과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오늘의 상황에 맞게 해석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상황에 맞는 해석’은 때때로 성경본문의 해석에 오해와 오류를 범하기도 하며, 서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 하는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여행을 떠난 주인이 한 달란트를 맡긴 종은 자신이 받은 재산을 땅에 묻어 놓아 원금을 유지했다. 예수님은 ‘게으른 종’이라 꾸짖지만, 이 사람은 자신이 나름대로 주인(하느님)의 뜻을 잘 받들어 관리했다고 주장한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마 25:24~25)”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사람의 주장에 하느님을 배반했거나, 불순종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에게 맞추어 재산을 관리한 것에 대해 별다른 잘못을 찾기 어렵다.
화를 내는 주인에게 이 사람은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마 25:25)”하고 항변한다. 주인의 재산을 착복하거나 허투루 써버리지 않고 잘 보존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주인은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마 25:27)”고 꾸짖지만, 그랬다면 원금을 손해 볼 수도 있었다. 이 주인은 ‘이 재산을 불려놓아라’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원금 그대로를 반납한 종을 나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우리의 소득을 잘 투자하여 스스로 재산을 늘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해야 할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내가 가진 것을 ‘두 배로 남겼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 달란트를 돌려준 종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26)”이라고 꾸짖기 때문이다. 만약 한 달란트 가진 종이 장사를 하다가 손해를 보게 됐다면 주인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마도 주인은 손해를 본 이 사람의 노고를 위로하고 칭찬했을 것이다. 결국 한 달란트를 가졌던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인이 좋아할 만한 말을 골라 핑계 대고 있는 간악한 마음에 대한 꾸지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성경말씀을 해석할 때 생기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자의적이어서는 안 되고, 더구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왜곡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가져야 할 원칙을 ‘믿음의 유비(Analogia Fidei 아날로기아 피데이, 유추)’라고 한다. 굳이 이 말을 확대 해석하자면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기본 원리에 맞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 논리적,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 해도 전능하시며 초월하신 하느님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믿음이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세상을 이해하며,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말씀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해서 칭찬받는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자신이 직접 삶으로 결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주인이 칭찬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보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서 믿음은 아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와야 하고, 내 삶을 통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소명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