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요한복음서 4:23~24, 로마서 12:1, 창세기 28:18~19, 시편 119:12~15
2021년 10월 3일_배안용 목사
우리는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구약에서 말하는 ‘성전’과 ‘교회’는 다르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주 예배드리러 가는 그곳이 교회인가 아니면 우리가 어느 곳에서도 예배드리는 그 장소가 교회인가 하는 물음에는 쉽게 답하기가 힘들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가는 도중에 루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다(창 28:10~22). 그리고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곳을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베델(창 28:19)”이라 이름 짓는다. 이것은 특정하고 거룩한 장소가 먼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연히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한 곳이 거룩한 곳이 되었다는 뜻이다.
교회는 특정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인 예배와 성례전을 통해 만들어지고, 교회의 그런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선생님,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요 4:19~20)”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의 배경에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오랜 논쟁을 이야기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들이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주 당신들의 하느님께 드리는 제단을 만드십시오(신 27:4~5)”라고 명령한다. 그것은 사마리아인들의 거룩한 산,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우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남북이 분열되면서 ‘성전의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공간과 장소’라는 개념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선물로 주어진 땅’이며, ‘하느님께서 구별하신 장소로서 거룩한 땅(성소, 성전)’이다. 우리가 교회를 특정한 장소로 생각하는 것은 구약성서의 ‘성전’이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약성서에서는 교회를 어떤 구체적으로 정해진 장소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룩한 땅’은 ‘하느님께서 거주하시는 곳(장소)’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의지에 의해 하늘로부터 임재하시는 곳(공간)’이라는 것이 구약의 역사서와 예언서의 선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절기 때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하느님께서 임재 해 계시는 유일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곳(신 26:2)”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성전에 직접 나타나신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우물가의 여인이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가(요 4:20)’하는 물음을 예수께 던진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 질문에 대한 것은 지나간 시대의 문제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이다.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요 4:21)”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새 시대의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요 4:22)”이라고 말씀하신다.
성전이라는 장소의 한계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극복되었다. 이제 성전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고, 예배 자체의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예배를 받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시기(요 4:23)” 때문이다.
요한복음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기 때문(요 5:24)”이라고 전하며, 예수님의 오심이 곧 종말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종말의 때에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다(계 21:22)”고 밝히면서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참되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가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대답하신 것, 바로 내가 ‘성자’이심을 밝히는 말씀이다.
신약성서에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의식에 공식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에클레시아(교회)’는 특정한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