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백성의 기도문
누가복음서 11:1, 베드로전서 1:21, 이사야서 55:6, 시편 91:9~14
2021년 9월 19일_배안용 목사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눅 11:1)”하고 부탁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11:2)” 하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제자들의 요청은 그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구약의 시편들이 모두 기도이고, 유대교의 유구한 전통에 수많은 기도들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유대에는 ‘카디쉬(Kaddish)’라는 짧은 기도문과 ‘18번 축복 기도(Shemone Esre)’라는 긴 기도문이 가장 보편적인 기도문이었다.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때에는 메시아가 와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해 있을 때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회개와 헌신을 다짐하는 운동이 많이 일어날 때였다. 그중에는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바리새인들의 운동도 있었고, 쿰란 동굴에 숨어 성경을 연구하고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였으며, 공동생활을 통해 새로운 헌신 운동을 하던 에센파도 있었다. 또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도 있었다.
이런 움직임들은 각자 내세우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이해, 자신들의 이상과 소망을 압축적으로 담은 기도문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한다고 선언 한 세례 요한의 운동과 이제는 예수의 활동으로 새롭게 예수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세례 요한 공동체의 기도문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제자들에게 있게 된 것이다. 세례 요한이 선포한 ‘회개하고 하느님의 나라 도래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는 계승하지만, 세례 요한과 예수는 다른 결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불로 임하실 하느님의 심판을 강조하지만, 예수는 심판을 통한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강조한다. 그래서 요한이 심판에 대비하여 극도의 절제와 금욕적 삶을 요구한다면, 예수께서는 죄인을 영접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선언하고, 그들과 먹고 마시는 잔치를 자주 벌이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따라나선 제자들이 예수께 새로운 기도문을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신학적인 내용과 그의 이상, 소망을 담아 표현한 예수 공동체가 드려야 할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은 예수 공동체가 함께 지향해 나가야 할 하느님 나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기도문이기 때문이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도 유대의 가장 기본적인 기도인 ‘카디쉬 기도’와 ‘18번 축복 기도’와 더불어 ‘주기도문’을 병행했으나 유대의 기도문은 예수 공동체와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병행하기 힘들어졌다. 예를 들어 ‘18번 축복 기도’의 12번째 기도문에는 ‘나사렛 당원들과 이단자들은 빨리 망하게 하시고, 그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하시며, 그들이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하지 마소서’라는 구절은 이방인 선교까지 넓혀나가는 그리스도교에 맞지 않았고, 저주에 가까운 기도문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거리낌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후 66~70년까지 일어난 유대 전쟁을 기점으로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유대교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자라 규정하고 유대 회당에서 쫓아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유대교에서는 ‘18번 축복 기도’의 12번째 기도문에 ‘배교자들에게는 소망이 없게 하시고, 교만한 나라는 빨리 우리의 생애에 뿌리 뽑히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추가되어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는 기도가 되었다.
마태복음서는 ‘주기도문’을 예수의 산상수훈 본문의 가장 핵심적인 자리에 배치하여 소개한다. 산상수훈의 ‘팔복’에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하느님만 의지하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애통해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밝히셨고, 이를 통해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마 5:3~16). 그리고 종교적인 삶의 실천들, 곧 경건한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데, 경건한 생활은 ‘금식, 기도, 자선행위’와 같은 언급(마 6:1~18)과 함께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다고(마 6:5~15) 기록한다.
기도는 청산유수처럼 잘해서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는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마 6:5)”고 질타하신다.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느님 백성의 기도문’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다시 다지는 시간이 되는 소명 공동체가 되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