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백성이다.
누가복음서 14:23~24, 고린도전서 1:24~25, 호세아서 2:23, 시편 100:3~5
2021년 6월 13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이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했으나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은 ‘내가 밭을 샀다’고 하거나 ‘소를 샀다’고 하고, 또 ‘장가를 들었다’고 하면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온다. 그러자 잔치를 베푼 주인은 화가 나서 종들에게 명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이 잔치에 사람들을 채우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빈자리가 많아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눅 14:24)”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누구든 데려다가 ‘내 집(교회)을 채워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오히려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것은 ‘믿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주님의 부름에 초대를 받아도 밭을 사거나 소를 사거나 또는 장가를 들거나 하는 세상의 일에 더 밝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였다(고전 1:21)”라고 권면한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고,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밭을 사는 것도 소를 사는 것도 그리고 장가를 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혜와 논리로는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는다(고전 1:22)”고 전한다. 유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신이 하느님의 능력을 지녔다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병을 낫게 하거나 신비한 초자연적인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 사람처럼 논리적인 사람들은 먼저 삶의 기본적인 안정이 보장되어야 지혜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 1:23)”고 말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자로서는 자격이 없는 실패자가 되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잘 사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본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도전이 되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수난’으로만 묘사하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만 말하는 것과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자세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다시 사심을 전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기에만 그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찾아서 밭도 사고, 소도 사고, 또 장가도 드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하느님의 지혜(고전 1:24)”라고 전하는 것이다. 믿음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예언은 “내가 거기에서 포도원을 그에게 되돌려 주고, 아골 평원이 희망의 문이 되게 하면, 그는 젊을 때처럼, 거기에서 나를 기쁘게 대할 것(호 2:15)”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 시신이 묘지로 나가는 곳, 전염병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었던 고통스러운 ‘아골 평원이 희망의 문’이 되는 것이 하느님의 능력이고, 지혜라는 말씀이다.
호세아는 하느님께서 돌려준 포도원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심어서 “긍휼히 여김 받지 못하였던 자(로루하마)를 긍휼히 여기며(루하마), 내 백성 아니었던 자(로암미)에게 너는 내 백성(암미)으로 키울 것”이라고 하시며, 그때서야 하느님을 향해 “주님은 나의 하느님이십니다!(호 2:23)”하고 대답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하였으니, 이제 내가 잘 사는 모습으로 그에게 보답하듯이 살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통해 ‘너는 내 백성이다’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그의 다시 사심,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여야, 아골 평원이 희망의 문이 되고,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올바른 ‘십자가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초대를 받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초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할 것(눅 14:24)”이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과 응답하는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서 아골 골짜기 같은 우리의 삶을 ‘희망의 문’으로 바꾸는 소명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