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느님
요한복음서 8:5~6, 갈라디아서 6:1~17, 미가서 7:18~20, 시편 33:1~12
2021년 6월 6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이전의 왕들과 달리 여러 산당을 부수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열어 종교개혁을 시도했지만, 유다 사회 전반에 걸친 백성의 뿌리 깊은 죄악을 향한 하느님의 진노를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가는 여러 가지 종교적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지만,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삶의 모습과 자세를 부각해 언급한다. 미가는 유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된 주요한 요인이 이런 종교지도자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미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느님 같은 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에게 넘겨줄 수 없어 남기신 이 적은 무리,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용서해 주시고,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 주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기쁨이야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시는 일 아니시겠습니까?(미 7:18)”라며 하느님께서 과거에도 지켜주셨듯이 현재도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며, 앞으로도 그 사랑을 베푸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조차 죄악에 물든 이 상황에 하느님은 어디 계신지 물을 법도 하지만, 미가는 오히려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부를 때,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쓴다. ‘전능’의 사전적 의미는 ‘못 하는 것이 없이 모든 일에 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란 ‘못하는 것이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못하는 것이 없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 무작정 하느님께 구하기도 한다.
전능하신 분의 능력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다. 예수께서 많은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려와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묻는다. “선생님, 이 간음한 여인에 대해, 모세는 율법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레 20:10; 신 22:22-24)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요 8:2~5)” 예수님께서도 전능하신 분이니 이런 일을 순식간에 매우 극적으로 처리하셨을 것이라 예상되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 8:7)”하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난 다소 싱거운 명령이고, 뭔가 ‘전능한 분의 결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통쾌하게 혼내줄 따끔한 해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악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세상이 그렇게 ‘권선징악 勸善懲惡’으로 ‘해피엔딩 Happy Ending’이 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 줄 영웅과 전능하신 분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낙담한다.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는 세계에 놓인 우리의 현실은 한없는 나약함만을 확인하는 잔인하고 무기력한 세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때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한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와 겪는 문제는 내가 부모로부터 받고 있는 것이 관심 關心인지, 간섭 干涉인지 판단하게 되고, 결국 부모와 심리적인 대립을 하게 된다. 이런 대립에서 전문가들은 부모들에게 ‘관심의 목적은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려 하지만, 간섭은 상대방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 한다’고 하며, 간섭보다는 관심을 보이라고 충고한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해결책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말았다. 모두가 이 여인을 정죄하지 못하고 떠나갔을 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요 8:11)”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해결책은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무거운 잣대를 들이대어 판단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가진 불의와 차별과 아집 我執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알게 되었더라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잡다한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커서도 계속 부모에게 의존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면, 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기대할 수 없듯이,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를 따라다니며 무슨 일이든 해결해 주는 부모도 결코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하느님의 전능하심은 오히려 인간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많은 일들을 통해 생각을 키우며, 스스로 자신을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돕는 능력이다. 
우리가 현실의 문제를 당당히 마주하고 기도하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시는 전능하신 주님의 소명 공동체로 살아가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