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라.
요한복음서 9:1~3, 사도행전 26:3, 민수기 9:15, 시편 16
2021년 4월 11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대승불교의 경전 ‘능가경’에는 ‘견월망지(見月亡指)’라는 말이 나온다. ‘달을 봤으면, 달을 가리키는 손을 잊으라’는 뜻이다. 달을 가리켰지만,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않는 경우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 머무르고 있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증거궤가 있는 곳에 성막을 세웠다. 그런데 구름이 성막을 덮으면서, 밤에는 성막 위의 구름이 불처럼 보였고, 아침까지 계속되었다(민 9:15).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성막 위로 걷혀 올라갈 때면, 그것을 보고 난 다음에 길을 떠났고, 구름이 내려와 머물면, 바로 그 자리에 진을 쳤다(민 9:17).” 하느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출 13:22)”으로 인도하심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포로생활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진을 쳤고, 주님의 지시에 따라 길을 떠났다(민 9:23)”고 한다.
#2 유대의 새로운 통치자 베스도는 부임한 지 사흘 만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총독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의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해 고발한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은전을 베푸는 셈(행 25:3)’으로 가이사랴에 감금되어 있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말과 자기도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한 다음에, “만일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여러분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를 고발하시오(행 25:4~5)”하고 말한다.
베스도가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바울을 데려 오게 하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중한 죄목으로 바울을 고발하기 시작했으나, 확실한 증거는 하나도 대지 못하였다. 베스도는 유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재판을 받는 것이 어떤지 묻지만, 바울은 “이 사람들의 고발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나는 카이사르에게 상소합니다(행 25:11)”라고 대답한다.
며칠 후,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를 만나려고 가이사랴에 왔을 때, 총독은 바울에 대한 고발 사건에서 유다 사람들이 유죄를 내리고 자신에게 왔다고 말한다. 아그립바는 ‘로마의 관례로 피고가 변호할 기회를 갖기 전에는 그 사람을 넘겨주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왕에게 직접 상소한 바울을 아그립바가 직접 신문한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일들, 예수를 만난 일들에 대해 상세히 말한다. 왕은 재판정을 물러가며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소(행 26:31)”하고 말한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고 만다.
#3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묻는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요 9:2)”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도 아니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요 9:3)”이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서,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갔다(요 9:6~7).”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보고 여러 가지로 판단을 하고 거기에 따라 선택을 하며 산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구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보고, 구름 속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주장하며, 다른 곳에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구름을 통해 인도하시는 것이기에 구름의 현상이 곧 하느님이 인도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을 재판에 넘기려는 사람들은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바울이 무조건 유죄라는 것을 미리 판단하고, 정치적인 관계를 이유로 판결을 한다. 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본질 보다는 눈에 바른 진흙에만 더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결국 본질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현란한 술수로 속이는 자들에게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결국 절망에 빠져 실망을 안고 살거나, 잠깐의 안도감을 갖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눈먼 사람을 고치시는 사건 속에서도, 제자들은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인 지부터 따진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고치시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행하셨다. 우리가 보는 사회의 현상들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려고 애쓰는 모습은 매우 신앙적이지만, 이런 신앙적인 판단이 자칫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하느님의 시각으로 살피는 것임을 잊지 말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