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신
마가복음서 15:42~45, 사도행전 13:29, 예레미야서 22:19, 시편 118:14~24
2021년 4월 4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실은 죽은 척하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나타났다는 주장이나, 원래 신이었기 때문에 몸은 허상이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마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에 대해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막 15:42)”고 기록한다. 안식일 전날은 금요일을 뜻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죽고 난 후 저녁때 즈음에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간다. 이 요셉은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는데,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막 15:43)”고 한다.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는 요구에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막 15:44).” 빌라도가 백부장에게 예수의 죽음을 확인한 다음,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주었다(막 15:45)”는 것이다. 로마에서는 황제에 대한 반역죄가 아니라면,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친척에게 내어 주어 매장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큰 반감이 없었으므로 사형집행관을 통해, 죽은 것을 확인한 후에는 별 저항 없이 시신을 내어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은 장례식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서, 유죄인 것이 발각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한 사람들조차도 해가 지기 전에 내려서 매장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처형이 있고, ‘이미 날이 저물었을 때’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려 한 노력은 시간적으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날이 완전히 저물고 난 후에는 안식일이 시작되어, 시신에 손을 대는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룩한 날이라 불리는 안식일에 시신을 내리는 일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빌라도가 시신을 내리는 일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던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은 누구일까? 먼저 이 사람은 “명망 있는 의회 의원(막 15:43)”이라고 한다. 로마가 지배하는 시대의 각 지역에는 대도시 시의회 등의 의회가 있었다. 그런데, 요셉이 예루살렘을 관장하는 시의회(공의회)의 명망 있는 의원이었다는 점은 특이할만하다. 마가는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기사에서 예수님에게 두 번 유죄 판결을 내린 예루살렘의 권위 있는 기관을 언급한다. 이 권위 있는 기관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로 구성된 ‘산헤드린’이다.
물론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을 설명하는 두 번째 문장은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막 15:43)”이라는 표현이다.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느님 나라의 비밀”이 맡겨진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이 요셉도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막 12:33)”라고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막 12:34)”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마가는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제자들과 제자 외에도 율법을 독실하게 지키는 사람들도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마가복음서가 율법학자나 서기관처럼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을 추구했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묘사했다면, 요셉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산헤드린 회원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장사 지내기 위해 시신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산헤드린 회원이 예수의 시신을 요구한 것은 범죄자의 시신일지라도 일몰 후까지 십자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일몰이 되기 전에 예수를 매장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이 빌라도에게 ‘대담하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다면, 그것은 그가 예수를 기소하고 사형으로 몰고 갔던 산헤드린의 존경받는 회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집행을 담당한 빌라도와 사행 집행인을 통해 증명되었고, 예수를 재판에 넘겨 사형을 요구한 유대의 의회원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참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건임을 기억하며, ‘소명공동체’로서 생명을 택하는 삶을 살아가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