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달아난 젊은이
마가복음서 14:51~52, 로마서 8:18, 이사야서 63:1, 시편 23
2021년 3월 14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오직 마가복음서에만 나오는 ‘도망간 젊은이’에 대한 보도가 있다. ‘새번역 성경’은 이 기사에 “어떤 젊은이가 맨몸으로 달아나다(막 14:51)”라는 제목을 붙였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막 14:50).” 그런데 그때,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호송하던 군사들이 그 젊은이를 잡으려고 하자,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막 14:52).” 이 장면은 이렇게 끝난다.
역사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 많은 연구를 진행하여, 세베데의 요한이라든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든지, 마가 요한이라는 등의 주장을 제기했으며, 영지주의자들은 이때 달아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이후에 고난 받은 것은 예수의 허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그가 홑이불을 두르고 나왔다가 맨몸으로 도망간 것에 대한 의견도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젊은이의 ‘맨몸(벌거벗은): 에피 귐누)’에 대해 말하기를 예수를 따라가던 젊은이가 호송대에게 홑이불을 잡혀 붙잡히기 전까지는 주의를 끌지 못했으나, 맨몸으로 달아나자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것은 예수님이 체포되어 호송되는 과정에서 이웃에 살던 호기심 많은 이 젊은이는 아마도 예수님의 호송길 근처에 살던 사람으로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으며, 구경하기 위해 홑이불을 그대로 두르고 집 밖으로 나가 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청년을 마가 공동체에서 세례를 받고 입회했던 그리스도인으로 본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절차에서 입회자는 옷이 벗겨지며 세례를 받기 위해 맨몸으로 물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흰 옷을 입고 나오게 되는데, 그 입회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살았다는 의미라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에서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막 16:5)”고 증언한다. 이렇게 ‘옷을 입은 젊은이’는 마가복음서에서 14:50과 16:5에만 등장하는데 이 젊은이의 동질적인 단어(네아니스코스)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예수님을 따라갔던 젊은이는 홑이불(신돈)을 걸치고, 무덤에 있던 젊은이는 흰 옷(스톨레 류케)을 입었지만, 그가 무덤에 갈 때, 옷을 다시 입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유대의 전통에서 천사장 라파엘 등을 네아니스코스로 불리는 것으로 볼 때, 천사라고 할 수 있으나,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마가복음서에는 ‘제자들이 모두 도망간 일’의 바로 다음에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도망 간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이 사람이 모든 다른 사람들이 도망갔을 때에도 예수님을 따라가던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서는 이 사람에 대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별로 중요하지 않는 ‘어떤 사람(젊은이)’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체포 장면에서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라 버렸다(막 14:47)”는 구절의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과 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기록한다. 
여기에서 호송하던 무리들은 젊은이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체포하는데 쓰인 “그들은 예수께 손을 대어 잡았다(막 14:46)”는 기록과 같은 동사를 쓰고 있다. 그것은 이 젊은이가 예수님의 편에 서 있던 사람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통 예수께 부름 받은 제자들은 매우 짧은 만남 후에 예수님을 따랐던(막 1:18~20, 2:14, 10:17~21, 52) 것처럼 이 젊은이도 예수님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면, 이야기의 전개상 호송하던 무리들은 이 젊은이를 체포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많은 연구들에도 풀리지 않는 것은 이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면, 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며, 마태와 누가는 왜 이 내용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겼을까 하는 물음이다. 특별한 지식을 주장하려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목적에 따라 복음서에 나타난 덜 중요한 인물들을 이용하여 계시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할수록 자신들의 상상력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에 기록된 ‘맨몸으로 달아난 젊은이’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따랐고’,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고난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을 맞으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소명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 베푸신 그 생명과 평화의 은총을 깊이 생각하자.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