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유대와 이방인
누가복음서 22:26, 요한계시록 11:17, 느헤미야기 13:1~3, 시편 15
2020년 7월 26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이스라엘이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이라고 여기는 유대의 민족주의는 유구한 역사를 통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외국인', '이방인' 그리고 '나그네'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며, 이는 이스라엘 민족과는 다른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윤리적이며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초창기부터 사회적 약자, 즉 고아와 과부, 그리고 이방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전 11세기 말(주전 10세기 초)로 추정되는 키르벳 카이야파 비문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이방인(ger)'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많은 곳에서 타 민족에 대한 포용성을 전하고 있습니다(요셉 이야기, 모세의 결혼 이야기, 룻기,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그 땅의 백성과의 결혼 금지). 포로 이후 유대 공동체에서 자국인과 이방인의 개념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 개념이 문화적 이질성과 함께 ‘종교를 통해 소속감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아스만은 ‘배타성’과 ‘소속성’을 구분하는 기준을 “혈연, 언어, 종교, 삶의 형태, 지역적인 경계, 정치적인 통일성”이라 정의합니다. 이방인에 대한 차별은 포용성과 배타성의 문제로서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고대의 단일문화 중심에서 다문화 중심, 특히 세계화 등으로 변모하는 시대로 들어서면서 ‘민족주의’만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때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구약성서에서 이방인은 “게르, 토샤브, 자르, 노크리(네카르)”로 나타납니다. ‘게르’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 지역에 살아가지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를 지칭하며, ‘토샤브’는 ‘땅을 소유하지 않는 이방인’으로 소개되지만 게르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자르’는 여러 가지 의미로 나옵니다. ‘노크리’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며 낯선 땅에서 온 자를 말합니다. 또한 ‘노크리’는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가나안인 또는 북왕국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외국인 또는 외국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네카르’에 대해서는 종종 이방의 신들과 함께 부정적으로 등장(창 35:2,4 신 31:16; 32:12)합니다. 이스라엘 왕조 시대와 포로기 시대 그리고 초기 유대주의 시대에는 외국인에 대한 규정이 엄격하다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다윗왕가와 관련된 룻기서는 모압 여인을 ‘노크리야’로 소개하면서 그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속되어 있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룻 2:10). 여기서 ‘노크리’는 포로기 이후 뚜렷이 나타난 사회적 계층으로 나타나며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소속되지 못하고 오히려 배타적인 자리에 있다고 소개합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표면적으로 유대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 땅의 백성들’과의 통혼을 금지하는 신명기7장의 관점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중심적 사고지만,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이방인과 타민족 사이의 구분을 ‘종교적이며 제의적인 입장에서 새롭게 정의하려는 공동체’로서 초기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3장은 정치적 입장에서 유대인의 결속을 새롭게 했고, 이방인과의 관계가 아닌 제사장의 정결함에 대해 지적합니다. 또한 에스라 9~10장은 고대 근동의 민족주의적인 개념인 혈통 중심의 공동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또 이사야 6장에서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는 ‘혈통과 언어, 기타 한 민족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요인들’이 아닌 ‘율법 준수’를 통한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제시합니다.
유대인의 혈통과 민족의 일치를 주장하기 위하여 타문화와 타종교에 대해 행해지는 무분별한 배타는 오늘날 사회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안겨주고, 반대로 무분별한 수용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은 성전과 유대사회를 떠나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다문화(Multiculture)문제는 이방인에 대해 ‘사회 정의의 잣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관계성을 회복하여, 민족과 지역적 국가의 개념을 극복한 ‘하느님의 나라’라는 공동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소명을 통해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갑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