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빛의 축제(하누카)
요한복음서 16:24, 사도행전 1:22, 마카베오서상 7:47~50, 시편 97
2020년 5월 24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마타디아스가 주전 166년에 죽자, 셋째 아들인 유다스 마카비는 셀류쿠스 왕조에 대한 유대의 독립 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했습니다. 마카비는 소규모의 게릴라전 보다는 셀류쿠스 정부군에 대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여 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마카비(Judas’ Maccabeus, 주전 166-160)혁명”으로 주전 164년에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시리아인들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합니다.
유다스가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에 도착하니, 성전 문은 불타 버렸으며, 성전 뜰에는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유다스와 백성들은 비통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성전을 조심스럽게 청소하고 새 기물을 들여온 후에 문들에 휘장을 치고 새로운 문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성전의 제사가 끊긴 날로부터 딱 3년 만에 다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유다스는 성전을 정화한 뒤 새롭게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고 8일간의 봉헌 축제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하누카(Hanukkah)라고 하는 히브리 ‘빛의 축제’(the Festival of Lights)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하누카는 빛의 축제, 헌신의 축제, 또는 마카베오(Maccabeus) 가문의 축제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누카는 마카베오 가문이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유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았을 때, 그들은 성전의 등을 밝힐 기름이 하룻밤 분량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름을 찾아서 채우기까지 8일 동안 성전의 등은 꺼지지 않고 계속 빛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이 기적과 같은 일을 기념하는 것이 ‘빛의 축제’입니다.
하누카는 ‘봉헌(dedication)’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누키야(hanukiya)의 빛’은 가지가 양쪽으로 4개씩 펼쳐져 아홉개의 초를 켜는 촛대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마카베오 가문이 촛대의 불꽃을 8일 동안이나 밝히면서 보여준 헌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아홉인 촛대에서 각각의 가지는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도록 고안되어서 불꽃이 각각 구별되므로 ‘이교도’의 모닥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대로라면 하누카는 사실 유월절이나 속죄일에 비해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성일이지만 20세기에 접어 들면서부터 서구의 유대인, 특히 유대계 미국인들에 의해 하누카는 마치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정도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파티를 열어 이날을 축하하고, 성전의 등을 생각나게 하는 재료인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감자로 만든 케이크인 감자 라트케스(latkes)와 젤리도넛인 수프가니요트(sufganiyot)가 가장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그리고 이 축제에는 네 면으로 된 팽이인 드레이델(dreidel)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드레이델이라는 이름은 ‘돌리다’는 뜻의 독일어 ‘드레헨(drehen)’에서 나온 것입니다. 팽이의 각 면엔 “눈, 기멜, 헤이, 슌”이라는 히브리문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위대한 기적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라는 뜻입니다. 드레이델은 단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안티오쿠스 통치 시에 유대인들을 구한 1등 공신입니다.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열거나 율법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드레이델을 가까이 두었다가 로마병정이 다가오면 성경을 집어넣고 게임을 하며 노는 척 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카비 혁명으로 유다의 종교적 순수성만이 아니라 정치적 독립을 원했던 유다스(Makkabeus)는 당시 셀류쿠스 왕조의 내분을 유도하여 점차 정치적 실권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마카비는 주전 162년 종교의 자유를 획득하고, 모데인 남동쪽에 있는 엘라사에서 셀류쿠스 군과 싸우다가 주전 160년 전사했습니다.
유다스를 계승한 그의 막내 동생 요나단은 제사장으로서 헬라주의자였던 알키무스를 대신하여 당시 최고 종교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전 153년에는 정치적으로도 최고 실권을 가지는 대제사장이 되었지만, 시리아인들의 음모로 주전 142년 요나단은 살해되었습니다. 요나단이 죽은 후 군사령관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계승한 둘째 아들 시몬은 외교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로마와 조약을 맺고 원조를 받고, 유대의 독립 투쟁을 다시금 활발히 전개할 수 있었는데, 마침내 주전 142년에는 유대 지역에 있던 시리아군을 완전히 격퇴하여 실질적인 유대의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왕조가 끊어진 이스라엘에 하스몬 왕조를 세우게 됩니다.
주전 2세기, 예루살렘에는 하느님의 신앙이 회복되는 희망이 보이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희망이 보이는 순간과 절망이 보이는 순간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살펴봅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