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포로 된 자의 성전 20200322 카드37. 포로 된 자의 성전.pdf
요한복음서 19:11, 디모데전서 1:14, 에스겔서 11:15~17, 시편 32
2020년 3월 22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는 것이고, 더욱이 요시야의 신명기 개혁운동의 결과로 야훼 예배는 중앙 성전에서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 팔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수염을 깎고 옷을 찢으며 몸에 상처를 내고 야훼의 성전에 곡식예물과 향료를 바치러 왔다(렘41:5)”고 할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예루살렘 성전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상황은 유다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포로 된 유다 사람에게는 유일한 하느님의 성전이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은 포로로 이국땅에 끌려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이제 1년에 세 번씩 성전을 방문해야 한다는 규정(출23:17, 34:23, 신16:16)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습니다. 포로민들은 대부분 예루살렘 귀족, 즉 정치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기에(왕하24:14, 25:11) 그들에게 성전에 갈 수 없는 것은 더욱 큰 고통이었습니다.
여기에 유다에 남아있는 자들, 즉 예루살렘 주민들은 포로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모두 야훼 앞을 떠났으니, 이 땅은 우리의 소유가 되었다(겔11:15)”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지은 자들이며, 그래서 그 죄 값으로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고, 반대로 자신들은 하느님 가까이 있으므로 징벌을 받을만한 죄가 없는 의로운 자라는 주장입니다.
에스겔은 이들을 향해 “너 사람아, 이들은 이 도성에 재난을 끌어 들이는 일만을 생각하고 나쁜 일만을 꾸미는 자들(겔11:2)”이라고 꾸짖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바빌로니아의 영향권에 있는 시드기야 정권의 비호 아래, 행정력을 장악하고, 친 이집트파를 비롯한 옛 귀족 계층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저지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부동산을 불법적으로 탈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에스겔서 9장에 나타난 대 파멸의 원인을 자신들의 범죄에서 찾지 않고, 야훼의 통치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 야훼께서 그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셨다면, 그들이 지금과 같은 참혹한 운명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변명입니다. 이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가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전 신학(시온 전승)을 신봉하며, 야훼께서 멀리 계셨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파멸이 초래되었다고 원망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거짓된 믿음은 참된 참회와 성찰의 길을 가로막았고, 그 책임을 하느님께로 전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야훼 하느님의 임재와 현존에 대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야훼의 영광이 보좌와 함께 이동하는 광경으로 묘사(겔1:28, 8:4, 9:3, 10:4, 10:18, 10:19, 11:22, 11:23, 43:2, 43:4)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영광이 성전에 있었으나, 지금은 질투를 일으키는 우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탄식하며, 에스겔 8장에서는 야훼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그들을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쫓아 보내어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게 하였지만, 나는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얼마 동안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 주리라(겔11:16)”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에스겔은 전통적인 ‘성전신학(시온 전승)’에서 주장하는 성전의 기능과 직무를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야훼의 존재에서도 찾습니다. 에스겔은 야훼의 통치가 성전에 묶여있지 않고, 그의 자유로운 주권에 달려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인격적 존재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전이란 하느님이 임재 하는 곳으로, 인간이 하느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과 영이 새로워집니다. 하지만 성전은 결코 건물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며, 이는 하느님의 임재의 한 양식일 뿐입니다. 하느님 자신이 곧 성전이며, 임재의 현존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하느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어디든 거룩한 곳이며, 그래서 하느님이 계신 곳이 곧, 성전이라는 사상을 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남은 자들이나 포로 된 자들에게 모두 큰 상처와 시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낡은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선다면, 그들은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자리에 있도록 하느님만을 바라봅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