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같은 하느님, 같은 신앙
마가복음서 7:26~28, 히브리서 2:12~13, 사사기 21:25, 시 22:1~31
2019년 12월 1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이집트를 탈출한 하비루들은 모세를 따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가지만, 그들의 여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비루들이 40년이 걸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광야에서의 40년 동안 그들은 노예생활의 문화와 습성을 벗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이 모두 실패했다고 증언합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 지파가 가나안족을 치러 앞장서 올라 갈 것인가를 야훼께 물었다(삿 1:1)”는 기록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가나안에 들어가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한 세대가 지난 후에는 환경이 많이 바뀌고, 사람들도 바꿔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의 약속을 성취할 준비가 충분히 되었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광야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시기는 이들이 왜 아직도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하지 못한 것인지 설명합니다.
에브라임 산간지방에 미가라는 사람(삿 17:1)이 있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돈 천 냥을 잃어버렸는데, 이 은돈을 가져간 도둑을 저주합니다. 그런데 이 은돈을 가져간 것은 아들인 미가였고, 아들에게 내린 저주를 풀기위해 “조각한 목상에 은을 입힌 우상(삿 17:4)”을 만들었습니다. 미가에게는 개인 신당이 있었는데, 여기에 이 우상을 놓았습니다. 이 기록 후에 사사기는 마치 후렴처럼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 17:6)”고 적었습니다.
이 때, 미가는 떠돌이로 지내던 레위사람에게 “우리 집에 살면서, 어른이 되어 주시고, 제사장이 되어 주십시오. 일 년에 은돈 열 냥을 드리고, 옷과 먹거리를 드리겠습니다(삿 17:10)”하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레위사람은 미가의 집에 살면서, “미가의 친아들 가운데 하나처럼(삿 17:11)” 되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도, 섬기는 사람도 모두 제물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들이 자리 잡고 살 땅을 찾고 있었습니다(삿 18:1).” 그리고 정찰을 하던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 있는 개인 신당의 우상들을 발견하고 강탈해 갈 때, 미가의 집안 제사장이 막아서자 “조용히 하십시오. 아무 말 말고 우리를 따라 나서십시오. 우리의 어른과 제사장이 되어 주십시오. 이 집에서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야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삿 18:19)”하고 제안합니다. 단 지파는 “그 땅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삿 18:30)” 이 우상들을 신당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사시기는 기록의 제일 마지막에 다시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 21:25)”고 끝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본 것은 가나안 사람들의 부유함과 그들의 안정적인 생활환경입니다. 그들의 신상은 금과 은으로 빛났으며, 정말로 당장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것처럼 보였습니다. 긴 세월동안 광야에서,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강한 왕이 있다면, 좋은 환경과 부유함이 있다면, 그것이 곧 축복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사기가 쓰인 시기는 ‘이 백성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등의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다윗왕조의 몰락과 포로기를 알고 있었던 시대, 즉 포로기나 그 이후일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사사기가 “그 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었으므로,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했다”고 말한 ‘왕’은 국제관계나 국내 정치, 그리고 우상 건립 등 제도로 통치하는 다윗왕조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사사기가 말하고 있는 ‘왕’은 신앙적인 가치를 공유하여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하느님의 뜻과 정의를 실현할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뜻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가치가 아닌 ‘신앙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의 가치는 왕권이나 부유함, 제도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소명으로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소명을 가진 사람을 가족으로 부르시며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명공동체로 살아갑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