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메섹의 계시
마가복음서 16:19~20, 갈라디아서 1:11~13, 에스겔서 1:26~28, 시 90:1~12
2019년 9월 29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실제 하심을 체험하는 순간을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경험으로 증언합니다. 그것은 이사야의 ‘제단 숯불로 정화된 사건(사 6:1~13)’과 예레미야의 ‘살구나무와 끓는 가마(렘 1:11-19)’의 환상 등입니다. 에스겔은 자신이 하느님의 수레를 본 것을 전하면서 자신이 겪은 신비한 체험을 증언합니다. 4마리의 짐승이 끄는 수레 위에 “청옥 같은 것으로 된 옥좌(겔 1:26)”를 본 것입니다. 그 옥좌 위에는 “사람 같은 모습”이 보였는데, “허리 위는 놋쇠 같아 안팎이 불처럼 환했고, 허리 아래는 사방으로 뻗는 불빛(1:27)”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에스겔은 그 모습을 “마치 야훼의 영광(1:28)”처럼 보였다고 증언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실제를 체험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자들의 체험을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환상은 ‘어떤 대상에 대해 가지게 되는 기대나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언자들의 환상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예언자들의 주관적인 희망에서 나오는 망상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체험은 환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묵시적인 계시’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묵시적인 계시’를 ‘신비주의 신앙’이라 분류합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라 부를 때, 지금과 유대의 이해는 서로 다릅니다. 지금은 ‘신비주의 신앙’을 ‘사회적인 문제나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상적인 세계에만 집중하여 일상생활이나 관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유대사회나 1세기의 팔레스타인에서 신비주의는 오히려 현실의 문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우리가 1세기의 신비주의 신앙을 이야기 할 때, 쿰란공동체를 말하지만, 쿰란공동체는 로마와의 전쟁을 위한 매우 구체적인 행동지침서를 가지고 있을 만큼 유대민족의 현실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교의 적극적인 신앙을 가진 바울은 이런 신앙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시민이었던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노예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와 빈부격차에 따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지지하고 있을 만큼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에 대한 형벌이었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사회적인 혁명에 대해서는 이해했던 바울이 예수님의 신앙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십자가는 유대 신앙에 대한 모독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가 전에 유다교 신자였을 때의 소행은 여러분이 다 들었을 터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 하였다(갈 1:13)”고 말합니다. ‘아주 없애 버리려고’ 했다는 말은 ‘완전히 없애버려 전멸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뜻합니다. 유대 신앙에서 ‘메시아’는 저주 받아 죽은 이가 아니고, 유대를 완전한 해방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참지 못하고 완전히 전멸시킬 행동을 한 것은 그의 강한 신앙심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완전히 바뀌었고, 자신이 가던 삶의 길에서 완벽하게 돌아섰습니다. 바울의 다메섹은 이사야나,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계시’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신앙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십자가의 그 처참한 죽음을 깨닫게 되었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다시 사신 주님’을 새롭게 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 여러분,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 둡니다(갈 1:11)”라고 전제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계시해 주신 것(1:12)”이라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는 이 경험을 통해 소명을 받은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이 받은 계시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같이 주님을 직접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전향했다는 것 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완전히 돌이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계시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로운 삶으로 바꾸는 ‘소명 공동체의 삶’을 살아갑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