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바울, 언약에서 소명으로
요한복음서 1:1~3, 갈라디아서 1:13~17, 창세기 1:1, 시 18:13~20
2019년 9월 22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주전 63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세계 평화를 선언했습니다. 이런 로마가 주도하는 강압적인 평화는 사실상 로마 특권층만이 누리는 평화입니다. 로마의 일반 시민이나 식민지 민족의 백성들은 정치적인 소외와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극도로 불안한 치안 상황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도 로마제국의 그늘 아래 놓인 불안한 사회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를 이루는 몇 개의 계층이 있었지만, 유대 내의 최고 권력가라 할지라도 로마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하느님 신앙은 자신의 이해에 맞게 왜곡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주전 37년 헤롯이 로마의 황제로부터 유대 땅의 분봉 왕으로 임명되었을 때, 당시 유대의 정치, 종교의 지도자였던 제사장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버렸고, 제사장들이 가졌던 권력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결국 유대의 최고 지도층인 제사장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까지 28명이나 교체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제사장들은 하느님보다는 유대 분봉왕의 눈치를 보며, 로마에 충성해야 했습니다.
유대 사회 내부에서 제사장에 이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록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제사장과 같은 삶을 살고자 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을 이어가려고 노력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 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분노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되지 못한 것이라 여기며, 유대가 다시 율법을 지킴으로 하느님의 회복하시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민지 유대 사회에는 신앙적인 신비주의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헌금을 거부했고, 진정한 하느님 신앙을 찾기 위해 광야로 나가서 생활하는 쿰란공동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는 신앙으로 그들만의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식민지 유대 사회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과도한 세금과 고리대금업자의 횡포로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도시와 어촌의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이런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었으며 식민지 민족의 설음과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기 민족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보통 자기 민족의 고유의 종교 의식을 계속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1세기 유대에도 함께 살고 있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신앙을 간직하며 타국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들이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중에 헬라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유대의 신앙과는 달리 십자가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은 육체를 넘어 영적인 세계에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디아스포라 중에는 철저한 유대의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현지 생활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시민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조국 유다가 하느님의 신앙으로 돌아서서 언약신앙이 회복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로마의 시민이며, 율법을 깊이 공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신봉하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다(갈 1:14)”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1:13)”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된 바울은 “이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계시해 주신 것(갈 1:12)”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 주셨고,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다(1:15~16)”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였고, 이스라엘의 언약 신앙을 철저히 신봉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사도로서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떤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고(갈 1:16), 삼년이 지난 후에야 베드로를 만났습니다(1:18). 그것은 유대의 어떤 사람들과도 다른 신앙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이후로, 자신이 받은 소명을 전하는 삶으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원대한 인류 구원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