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시, 십자가
누가복음서 13:1~5, 요한계시록 22:1~5, 이사야서 11:1~2,9, 시 18:25~33
2019년 8월 25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전15:3)”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쉽지 않은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는 지난 2천년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이제는 장식품으로까지 변해 왔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는 몇 개의 시점時點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건이 일어난 시점’, ‘사건을 기록한 시점’, ‘기록된 사건을 읽고 해석하는 시점’입니다. 또한 모든 일은 말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에 따른 관점觀點이 있습니다. 이런 시점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본래의 사건이 의미하는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사 11:1)”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바빌론의 포로 된 백성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구원과 희망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11:2)”는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포로생활로 고통 받던 백성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에 대해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사 11:9)”고 예언하며, “그 날,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은 만민이 쳐다볼 깃발이 되리라. 모든 민족이 그에게 찾아 들고 그가 있는 곳에서 영광이 빛나리라(사 11:10)”고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만민이 쳐다 볼 깃발이며, 모든 민족 앞에 그 영광이 빛날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을 단지 자신들이 포로에서 벗어난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가 전하는 하느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 모든 인류가 받을 기쁨의 나라는 생각지 않고, 단지 자신들만을 위해 내리시는 축복으로 축소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들의 처지에 하느님의 말씀을 맞추는 것은 말씀을 왜곡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 때에 갈릴리에서 로마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빌라도는 그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갈릴리에서 학살을 감행합니다. 이때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눅 13:1)”했다고 예수님께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13:2~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탑이 무너져 열여덟 시간이 희생된 사건’을 들며,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13:4~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보다 낫다’거나 ‘하느님을 믿어야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크게 왜곡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눅 12:22)”,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눅 12:35)”, “불을 지르러 왔다(눅 12:49)”, “이 시대의 뜻을 알아 보라(눅 12:54)”는 말씀에 이어진 것으로, ‘하느님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는 것’이 모든 인류가 가질 희망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사람이 앞뒤의 문맥과 역사적인 상황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말해 버리면, 본래의 뜻과 정반대되는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하느님의 나라를 예견했지만, 그 후로도 몇 세기 동안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지연된 종말’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도성에는 저주받을 일이 하나도 없을 것(계 22:3)”이며, “그 도성에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없을 것(22:5)”입니다. 그것은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22:5)”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소명은 우리가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등지고 우리만 모여앉아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미 시작된 하느님나라를 위한 시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기고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소명공동체로서의 사명을 다합니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