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십자가! 다시, 봄2
요한복음서 1:14~18, 고린도전서 1:18~25, 신명기 21:22~23, 시 37:28~40
2019년 7월 28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우리는 지난주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될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민족의 위기에서 만난 기독교 신앙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선진문화를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샤머니즘적 신앙을 지닌 사람들과 만나, 긍정적이거나 아니면 가치를 왜곡시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신학적 중심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하며 그 사역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의 중심이고,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있으며, 그 소명을 감당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창 12: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소명을 주시고, 아브라함이 그 소명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장면을 히브리서 기자는 “그는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히 11:10)”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하느님 나라 운동은 요한계시록에 와서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느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계 21:2)”라는 말씀으로 “새 하늘과 새 땅(21:1)”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사 6:9)’이기 때문(눅 8:1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바울도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골 1:2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되심과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느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느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신 21:23)”라는 율법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에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메시아’는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메시아라는 증거를 요구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고전 1:22)”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요구하는 ‘기적 σημεῖον 세메이온’은 지시, 기적, 표적, 표시라는 말입니다.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불타버린 사건은 유대인들을 엄청난 충격과 고난 속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이후 계속되는 이방 나라에 의한 통치는 유대인들에게는 민족적 독립을 간절히 열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당시도,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도 하느님의 형벌로 인한 포로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 세력에 대항하여, 유대 나라의 독립을 완성하실 분이 하느님의 메시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겉으로 나타난 이야기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쉽게 이해하거나, 세상살이에 매몰되어 하느님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하느님의 나라’를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은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해방을 가져다 줄 표적/기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 온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협조하고 충성했던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구호는 ‘죽은 후에 좋은 세상을 소망하자’는 말로, 기독교는 현실을 외면한 헛된 주장을 펼치는 집단으로 떨어지게 했으며, 민족의 해방만이 목표였던 사람들도 이념의 소용돌이에 함께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삶은 단순히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비추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소명을 담당했는가 아니면 세상의 선택을 따라 노예로 살아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과 실패의 상징이 아닌 구원과 새 생명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로부터 시작된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소명공동체로 살아갑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