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밧세바의 로멘스
마가복음서 11:9~10, 히브리서 4:7, 사무엘기하 11:2~4, 시편 43
2017년 10월 1일_배안용 목사(ab@seoulch.kr)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없었으므로 다윗의 왕궁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전합니다.(삼하 11:2~3)
밧세바가 우리야의 아내라는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합니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게 됩니다. 밧세바는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삼하 11:4)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생리기간이 끝난 시점이라 보여 집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전쟁 중이던 왕이 부하의 부인을 범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목욕하는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온 신하는 (당신이 잘 아는) 엘리암의 딸이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전했습니다. 다윗의 가장 용감한 30인의 특별부대(삼하 23:24~39)에 엘리암(34절)과 우리야(39절)가 들어있습니다. 가장 용감한 자신의 친위대가 목숨을 건 전쟁 중에 왕은 그들을 배신한 것입니다.
세월호의 밝히지 않은 7시간처럼 파렴치한 죄악을 저지른 다윗은 전쟁 중인 우리야를 호출합니다. 그리고 우리야에게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삼하 11:8)”라고 명령합니다. 밧세바의 임신을 무마하려고 우리야를 속이는 계략을 실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우리야가 집으로 가지 않자, 다윗은 우리야의 상관인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를 전쟁터로 다시 돌려보냅니다. 편지의 내용은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삼하 11:15)”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야는 다윗의 계획대로 전쟁터에서 죽게 됩니다(15~25절).
우리야의 상을 치른 밧세바의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니,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이 일이 주님이 보시기에 매우 악하여 예언자 나단은 다윗에게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 한 마리”이야기를 하며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삼하 12:10)”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결국 우리야의 아내였을 때 임신한 큰 아들은 병으로 죽게 되고, 둘째인 솔로몬이 태어납니다. 다윗의 뒤를 이를 아들인 압살롬이 자신의 누이인 다말이 솔로몬의 다른 아들 암논에게 욕보인 뒤 쫓겨났다는 이야기(삼하 13:1~22)를 듣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맙니다(23~38절).
아직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히 4:1)”해야 합니다. 다윗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절)”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되는 날에는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창 2:2)”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시 95:11)”고 말씀하십니다.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히 4:6)”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죄악으로 집안에 칼부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히 4:6).” 그것은 “그 말씀을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갈 것(3절)”이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후회처럼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시 95:8)”는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다윗 왕조는 스스로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우리의 안식을 약속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왕으로 오셨을 때,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막 11:9)”이라고 환호하는 사람들은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고 외치며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10절)”를 외치며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를 주님의 안식처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왕 예수님을 호산나 기쁨으로 맞이합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