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감사의 갈무리
역대지상16:23,갈라디아6:7,고전3:6-7,고후9:6
2017년 10월 1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한다. 이것은 진리로서 자연의 길이요 질서요 생명이 된다. 이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터득 하려면 먼저 심어야 나중에 거두게 하는 것을 알게 한다. 또한 여기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함도 알게 한다. 그리고 씨를 뿌리기 전에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하기에 씨를 뿌리려면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씨를 뿌려 거두려면 반드시 때가 지나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하지만 이는 어떤 씨앗도 뿌린 후 곧 바로 거둘 수 없다는 것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뿌린 씨가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하며 모든 일에 이익을 얻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것도 알게 한다. 그러나 뿌린 것 보다는 더 많이 거둔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모든 씨앗 에서 수확을 얻지 못해도 결국 뿌리는 것 보다는 많이 거둔다는 것을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농사의 법칙은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는데 팥 난다는 이치도 알게 한다. 종자대로 심으면 종자대로 난다. 이것은 소가 돼지를 낳을 수 없듯이 결국 소는 소를 낳고 돼지는 돼지를 낳는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또한 심는 자는 반드시 그 종자를 다음 기회를 갖기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도 주의 하여 알게 한다. 이는 다음 수확을 위해 씨앗 중 일부는 다시 뿌릴 수 있게 종자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한다. 이렇게 세상만사의 이치가 '심는 대로 거둔다' 사실로 진리인 된다. 이는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종을 치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알게 한다. "감사의 갈무리"는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무리하는 것이요 심는 것만큼 이루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갈무리하여야 함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감사로 하늘의 씨(복음)를 받는 하나님의 몸으로 사람의 인내로 잘 심는 자가 되어 하늘의 감사를 잘 챙기어 간직함으로 "감사의 갈무리"를 알게 한다. 때가 이르면,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이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갈무리'의 의미는 모든 것을 잘 거두어 돌보는 것이다. 이는 창조질서 순응에 대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4계절, 우주 천체의 지속적인 운행은 창조질서의 순응에 대한 이치로 되어진다. 원래 창조질서에 순응 하는 관계를 알게 한다. 이 회복은 말씀 안에서 이루어진다. 세계교회들의 추수감사절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감사절에 연유하면서 자기민족의 역사전통과 문화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접목하여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전하는 것은 풍요로운 재물에 대한 현혹됨이 아니고 이렇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늘 기억하게 하는 창조보전을 위한 감사인 것이다. 이렇게 창조질서를 지키고 생명의 감사를 아는 것은 우리나라의 한가위 명절이다. 그리하여 한가위는 우리의 삶과 마음을 나누고 넉넉하고 여유롭게 한다. 느긋하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스스로 의 감사를 알게 한다. 이는 "한가위가 감사를 아는 명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한국의 한가위와 구약성서의 초막절은 너무나 공통점이 같다. 초막절은 유대 달력으로 티쉬리월로 7월15일 보름날인데 한국의 한가위도 음력으로 8월 15일이다. 달만 다르지 날짜는 보름으로 항상 같은 것이다. 달밤을 즐기는 행사도 서로 같다. 그리고 조상을 찾아 경배하며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것도 같다. 초막절에는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조국 땅에 있는 성전을 향해 누구나 순례를 하며 조국과 조상을 기억하는 전통도 같다. 유대인들의 쑤카와 한국의 한가위가 추수한 곡식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도 같은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지배문화가 아니고 백성의 문화였다. 이 문화는 하늘과 땅, 신령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생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원초적인 신앙적인 풍습이었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성서는 우리에게 자연속에 깃들인 하나님의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본성 곧 보이지 않는 신적 본질과 영원하신 능력 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과 영원성이 창조세계인 자연에 나타나 보인다는 의미로 현시(顯示)되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과 우주 만물과의 깊은 관계 즉 불가분의 본질적 관계를 다음의 말로 표현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한다.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깊이 묵상하고 사색하고 영적 직관과 기도와 체험으로 알아 낸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기독교의 영성을 풍부하게 해준 자연에서 영감 받은 자들임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영성이 성서 전반에 자연 속에서 흐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여기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깊이 통찰하고 알게 해준 이가 현대신학의 과정신학자로 화이트헤드(A.N. Whitehead)를 알게 한다. 그는 하나님의 본성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이 세상 만물과 직접 관련이 없는 초월성 혹은 '원초적 본성'이라고 말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이 우주만물과 직접 관계된 제2 의 본성으로써 '파생적 본성' 혹은 '물리적 본성'이라 한다. 그는 이 세계 운주 만물은 단순히 하나님이 창조해 낸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물리적 본성으로서 자신의 본성의 일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우주는 하느님의 몸이라는 것이다. 유비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마음 곧 영적 측면과 몸에 해당하는 물리적 측면이 있는데 이 세상 우주 만물 곧 자연은 그 만큼 하나님과 직접적인 혹은 근원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화이트헤드는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이 그의 지으신 만물에 보여졌다고 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행복은 감사의 나무에 피는 꽃이요, 불행은 불평불만의 나무에 돋는 독버섯이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힘써야 한다. 신앙은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역설한다.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은 인생의 중요한 훈련의 하나이다. 너무 풍족한 생활을 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기가 쉽다. 무슨 일이나 쉽게 이루어지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가 힘들다. 고생 끝에 목적을 달성해야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이 태양의 감사함을 느낀다.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이 밥 한 그릇의 감사함을 갖는다. 갈증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시원한 물 한 그릇의 감사를 갖는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이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다. 기계에 기름을 치면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처럼 인간관계에 감사라는 기름을 치면 모든 일이 평화와 기쁨 속에서 부드럽게 돌아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감사라는 감정을 심어 주셨다. 우리는 이 감정을 키우고 확대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빛깔을 바로 분간 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색맹이라고 한다.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못 갖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색맹환자이다. 자기 인생에 대하여 아무 것도 감사할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요, 옅은 생각 이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 감사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병원 환자를 볼 때 자신의 건강함을 감사하자. 앞 못 보는 장애인을 볼 때 나의 두 눈 을 감사하자. 인생은 결코 외로운 것도 아니요, 불행한 것도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마음속에 지닌다면 인생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요, 기쁨과 보람이 있는 것이다.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그렇게 허무 한 것도 아니요, 괴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人間到處有靑山이라고 했다. 감사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라. 인생은 기쁨의 샘터요, 행복의 화원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성실하게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요, 열심히 노력하고 생활한 만큼 보람 이 있는 것이다. 비록 어두움과 절망의 골짜기로 지날 때에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감사의 밝은 태양을 가슴속에 지니고 기쁨의 인생을 기도로써 살아가자.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다. 진정한 감사는 영혼에 더 큰 감사의 햇살이 비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혜를 아는 것은 감사의 덕이다. 감사는 인간의 본성이다. 새가 노래함같이 인간은 감사한다. 감사는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에 대한 인간 의 본능적 반응이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다. 씨가 햇빛과 비를 받아 자람같이 우리의 감사도 경험 속에서 자란다. 역대 사도들은 고난 중에도 감사 했다. 독일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는 "이제 우리는 다 하나님께 감사하자"이다. 자연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것은 믿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갖게 한다. 인간의 존재도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하는 것 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자연과 인간이 생존하는 것을 알게 한다. 존재하는 것은 때에 따라 변화하기에 천하만사가 기한이 있어 가을에는 철을 따라 산과 들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게 한다. 지금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서 제 자리를 지키면서 철을 따라 처한 환경에서 묵묵히 한 생명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라면서 변화하여 세월을 따른다. 그 모습은 다양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을 자아내면서 꽃과 나무들로 계곡에 처하여도 기다림과 외로움을 감당하며 생명은 그 무엇이라도 이미 그 자체로서 더 이상 아름다움의 자태를 들어내고 자연에게서 수확한 많은 영글어 가는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알게 한다. 이렇게 성서의 가르침이 형성된 것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명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만사를 알게 하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보고 감사 하면서도 세월에 따른 시절도 보며 우수의 마음으로 상념케 한다. 가을과 함께 맞는 수확의 감사는 설날과 함께 한국의 2대 명절 중의 하나인 한가위(秋夕)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 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하신 추수의 감사를 생각하여 본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이다. 자연이 존재하기에 인간에게 절기와 축제가 있다. 그 절기를 따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감사로 그 축제를 갖는 것이다. 인간은 하 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서 감사의 갈무리로 축제를 하는 것이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