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없는 사회
사도행전 16:31. 시편127:1-5
2012. 1. 29.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옛날에 스승은 365일 내내 존경 받는 분이었다. 옛날에 부모는 어버이로 자기를 낳아준 분으로 사랑으로 걱정해 주는 존재로 알고 자녀들은 거기에 대한 효성의 마음이 그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번거로운 행사로 스승의 날, 어버이 날이 있어 형식적 행사만으로 이를 대행하려 한다. 생각하면 옛날에는 스승으로서의 인품은 존경의 대상으로 만인의 삶의 철학을 세운 귀감이 되는 스승으로 이를 영원히 간직했다. 옛날에는 스승의 날도 없었다. 어버이에 대하여서는 지극 정성으로 혼신을 다해 하늘이 낸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사회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처방하기에 골몰하여 이를 켐페인으로 대처함을 알게 한다. 오늘의 우리의 생활습성은 문제를 캠페인으로 대처하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에 생활이 익숙해 져 있다.
이러한 사회의 허약한 체질에 그때 그때 대충 생활의 문제를 대체(代替)해 가며 살고 있다. 이러한 대체로는 삶의 위계질서도 없고 존경과 책임도 모르고 우선 순위의 절차도 없기에 이러한 현상으로는 생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사회나 학교가 그러한 대체로는 해결할 능력이 없다. 능력이 없는 방법을 눈 앞에 있는 방식으로만 찾으려는 안타까움을 본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생기고 나로부터 생기는 그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정은 한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음으로 풍성한 생활의 유대를 얻는 공동의 정으로 삶의 철학을 가지게 한다. 이는 가정에서 배우며 부모에게서 생활철학을 습득하는 삶의 학습의 자리가 가정이며 가정환경이 사랑의 포근한 삶의 공동체로의 끈끈한 정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오늘의 이러한 가정의 붕괴현상으로 일파 만파 사회현상의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음을 보게 한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너진다. 가정붕괴의 문제는 가정의 연대적인 관계가 무너지고 사회는 공동체의 구축이 안 되는 상태에 이른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지금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가정, 학교, 사회의 문제는 가정에서 기인된 삶의 가치관과 생활질서의식이 결여된 점에 유의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라는 미명에 따라 그들의 생활습성이 합리적이고 편리하다는 여건으로 이를 선호함에 이르고 있다. 얄팍한 삶의 지식으로 주어 배운 것이 전부인 냥 삶을 영위하기에 선진의 삶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오늘을 풍부하게 사는 삶이 전부인 냥 그것만을 위해 경쟁하며 소유욕으로만 지탱하려 함에 주목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없어져 간다. 사회는 가정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가정이 없는 사회"로 만연되어 가고 있다.
사도행전의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간수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구원은 한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았으며 그의 가족들에게 간증하고 그의 가족이 마침내 믿고 구원받게 함에 유의한다. 가정의 구원은 한 사람의 구원과 다른 것도 아니고 온 가정이 구원받아 누리도록 함에 있음을 알게 한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구체적으로 적용된 곳은 가정이다. 이는 에덴 동산에 한 가정을 창조하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시작함은 하나님의 계획이 족장시대를 거치면서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켜오는 약속이었음을 안다. 구약에서 '가정'을 '미슈파하(mishpahah)'는 가족, 개인들의 가족적인 인연을 말하며 '엘레프(elep)는 가정이라는 넓은 의미로 혈통이나 결혼에 의해 연결되는 사람의 그룹을 의미한다. 여기에 상응하는 신약에서도 '파트리아'(patria)'도 '아버지'의 의미를 가진 말로 '파테르(pater)'에서 파생한 말이다. 이는 족보를 알게 한다. 이리하여 신약성서의 첫 머리 마태복음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한다. 가정은 두 가지 기초 위에 세워진다. 하나님의 '창조신학'과 그 연장 선에서 '언약신학'에 근거함을 알게 한다.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행16:31). '가정은 기초적인 사회체계인 만큼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하며 한 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회적, 물리적, 정신적, 영적 생활환경이며 교육적 환경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구성원 어느 한 사람의 정서적 상처는 개인에 국한되는 문제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없어져 간다. 사회는 가정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한 가정이 병들면 그 사회도 병들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에 전하여 온 바울과 실라는 복음의 캠페인으로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 하면서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믿음의 최종 목적은 선택된 자만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함을 받는 점에 이르게 한다.
어느 뜻있는 학자가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미국적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이의가 없다. 경제, 교육, 문화, 정치 면에서 그렇다고 한다. 세계는 지금 경제적 불황으로 심리적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경제의 혼란과 부진 때문에 미국에 의존된 전 세계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학자들은 미국식 경제와 사회시스템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 미국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돈에 대한 소유 문제와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의 효용가치에 대한 인식이 사회전반에 팽배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노골적(露骨的)으로 표현한다. 이는 물욕에만 치중하는 속물근성으로 말하는 스노비즘(snobbism)을 말한다. 이는 사회가 이상(理想)의 시대가 소멸하고 난 후에 허구의 시대로 돌입하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즉 이상은 없는데 그 이상에 대한 욕구만이 남아서 그 형식만이 잔존한다는 것이다. 즉 이데올로기나 여러 초월적 가치들을 그 자리에 내려 놓고 여전히 이상의 시대처럼 믿으려고 하는 그런 내용 없는 형식의 시대가 바로 오늘의 우리의 스노비즘 시대라는 것이다.
스노비즘과 동물화는 헤겔의 학자 코제브의 '역사의 증언'에서 말한 대로 두 가지 시대로 '허구의 시대'와 '동물의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음악감상이나 영화에서도 동물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동물화를 내부지향과 연결시킨 것을 아는 것이다. 이는 속물근성의 태도를 인간들이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생존의식은 스노비즘과 '동물의 회귀'이라는 것이다. 코제브가 동물이라 부르는 것은 미국의 소비자를 의식해서 부르는 것이다. 스노비즘은 고상한 체 하는 속물근성, 또는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일을 말한다. 이 의미에서 '인간의 동물화는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존하는 확실한 일처럼 보인다'라고 들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람들이 관념적 질문이나 도전 혁명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내면적 성찰 없이 오직 외부에서 주어지는 물질적 소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 올리고 그저 물질적 촉감과 만족을 찾는 오직 살아남고 즐기기 위해 목적만이 존재하는 자기이익추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동물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얼마나 더 오래 살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더 자극적인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추구로 살아가는 동물적 삶의 모습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의 사회가 '속물근성으로 채워진 사회'를 알게 한다. 이는 가정생활학습에서 생활철학이 없이 핵가족시대로 사회는 넘쳐난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며 깊은 신뢰의 관계가 넘쳐난다. 부모와 자녀가 없는 가정은 외롭고 쓸쓸한 텅 빈 집이다. 가정이 없는 사회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닌 관계가 단절된 곳으로 갈등만이 남는다. 사람 사는 사회에 가정의 사람이 없음은 동물사회를 보게 한다. 집은 아버지 하나님이 세운 가정이요 사회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얻는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