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8일
평화를 이루는 복된 사람
마태복음서 5:9~12, 고린도전서 13:8~13, 신명기 11:26~28, 시편 72: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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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삽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합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고전 13:8)" 우리가 종교적으로 신비로운 여러 가지 체험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비로운 경험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고전 13:8)"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고전 13:9)"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던 것처럼,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어른이 되어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고전 13:11~12)”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으뜸은 사랑입니다.(고전 13:13)"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분적이고 온전하지 못한 것은 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도 될 수 있습니다.
신변의 안전을 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성함을 복으로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을 때는 신변의 안전과 영양분의 섭취가 복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면, 이것이 과연 내 인생의 영원한 복인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것이 복이라면, 십자가의 형을 받고, 채찍에 맞으며, 결국 죽임을 당한 예수는 저주를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오는 모세를 기다리기 보다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한 이집트의 탈출 난민들이 복 받을 사람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살았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는 복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으며,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만 있었습니다.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삶 속에서는 무한한 사랑을 받고,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배우자를 인생의 반려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애완용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조금 어색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애완용 동물이 사람의 평균 수명에 훨씬 못 미쳐 죽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애완용 동물보다는 인간에게 더 정을 느끼고 부대끼면서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물론 애완용 동물이 무엇인가를 채워주거나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라 생각되는 ‘소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통을 위한 많은 장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쌍방의 완전한 소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내가 필요한 만큼만 소통하길 원합니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관계를 갖기 원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기 보다는 절대 크지 않는 애완동물을 반려하는 대상으로 삼습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게 되고, 내가 무시하지 못할 상황까지 가게 되지만, 애완동물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위로와 안정을 줍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도 이런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주면 그만이라는 신앙,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기복신앙입니다.
신명기는 우리에게 복과 저주를 모두 주었다고 전합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 앞에 복과 저주를 내놓습니다.(신 11:26)"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내놓으신 하나님은 누가 복을 받고, 누가 저주를 받을 것인지 신명기에서 밝힙니다. “오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며,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고,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신 11:27~28)”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억지를 부려 무엇이든 얻던 시절에는 모든 것을 다 이룰 것 같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했지만, 아직 우리는 '으뜸인 사랑'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직도 우리는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 맘대로 살면서 건강과 안위를 구하는 정도의 하나님만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여 나를 주장하거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에는 눈을 감고 맙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좀더 다가가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마 5:9~11)"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박해를 받고, 모욕을 당하고, 비난을 받고 있지만, 평화를 이루려 애쓰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여러분이 복을 달라고 외쳐대는 철부지 아이에서 성숙하여, 진정 복의 근원이 되어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