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하늘, 땅, 사람 모두는 사랑
마태6:10;13:10-23
2010년 7월 11일, 18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고대에서 현대까지 철학의 핵심에는 사랑의 열정이 있다. 고대인들은 이 열정을 경계했다. 그들은 그것을 '영혼의 착란'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정은 사유에 대한 사랑이요 사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 문제는 자신의 열정들을 표방하는데 거리를 두고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근대 세계의 인식의 문을 연 데카르트는 인간의 "생각함"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중세 신앙이 갖고 있었던 사유의 벽을 깨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자연 과학의 발달을 촉발하는 데에 그 철학적 근거를 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주체와 객체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인식의 흐름이고 곧 이것은 과학과 종교를 분리시키면서 그 골이 계속 깊어만 가게 만들었다. 여기에 세계관은 이신론(deism理神론)적 세계관이다. 이는 신의 존재와 진리의 근거를 인간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것에서 구하는 이론으로서 18세기 계몽 사상가들의 종교적 견해를 알게 한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이 우주를 가리켜 "수학의 언어로 쓰인 바이블"이라고 명명했다.
이 이신론은 근대 자연과학자들이 유신론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무신론이고 이를 향한 17세기에 등장한 뉴턴 물리학은 과학적 유물론의 결정판이자 인간 이성의 위대성에 대한 절정을 이루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들만이 인정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무신론과 유물론을 등장시키고 과학과 신앙이 대결로 치닫게 되었다. 이것은 철학이 시도했던 것처럼 사랑의 열정과 이성을 결합시키려는 것이었음을 아는 것이다.
이때에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1881년에 프랑스 샤르세나에서 태어나 신학자로서 그의 우주론은 '과학적 진화 현상론에 관심을 가지는 분으로 그는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만이 '사랑하는 것의 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물질을 이야기하는 과학의 비물질성을 또는 신앙에서 말하는 정신에너지(얼)의 물리적이고 생물학적 작용을 시대에 펼치며 우주는 정체적이고 불변적인 정지한 우주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상에 있는 역동적인 우주를 말하게 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인간 현상'(1939)은 이를 알게 한다. 태초에 우주가 발생하고 태양의 파편으로 부터 나와 형성된 지구는 무기물과 생명계라는 두 세계가 본래 한 몸 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세포 단계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구분이 불 분명 하듯이 그것은 낮은 단계에서는 모호하고도 희미한 존재로 있을 뿐이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샤르댕은 이것을 '이른 생명'이 '생명'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생명은 적극적으로 팽창하여 우리가 아는 생물들을 번식시키고 영장류의 진화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인간 현상을 태동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일의 결과를 보고 조그만 지식으로 열악함을 가지고 우열을 가지고 선악을 구별하고 자아도 모르면서 주관이라는 미명으로 다른 것들을 심판하고 재단하고 도태시키며 무리하게 인식하고 믿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늘은 참(眞)이고 하늘 아닌 그 밖의 것은 간사한 사(邪)가 되어 있어 참(眞)을 따르는 것은 정(正)이 되는데 사람이 정(正)으로 행하지 않으면 사(邪)를 따르는 것이 됨으로 참(眞)을 아는 이치를 터득해야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무지에서 탈출하는 것, 혼돈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며 궁극적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함에 이른다.
그 궁극적인 가치는 세상 처음의 이치를 터득하여 우주의 참된 도리를 찾는 것이다. 참(眞)은 색채와 형태가 없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이치, 절대 생명, 으뜸 생명, 근본 생명, 부모와 같은 생명, 속 생명, 주(主)가 되는 생명, 근본 또는 나무 전체의 생명을 뜻하고 반면에 사(邪=간사함)는 색채와 형태가 있음으로 언젠가는 변하는 상대생명, 종(從)이 되는 생명, 줄기나 잎에 해당하는 생명, 지식과 같은 생명, 겉 생명, 종이나 객이 되는 생명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생명으로서 어떻게 존재하는 가를 알게 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 땅,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처음을 알게 하고 하나의 이치를 알게 하며 시간이 가는 과정가운데 창조된 공간에서 생명의 질서를 알게 한다. 이것은 창조자와 피조자와의 교통과 순환관계가 섭리의 의도대로 질서 회복해 간다는 것이다. 여기 하늘, 땅, 사람은 모두 하나 되어 창조의 실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인류는 하늘의 뜻을 져버리고 창조의 약속을 어기면서 땅을 파괴하고 하늘을 역천(逆天)하며 사람들은 갈등으로 인류는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로 보면 창조함을 받은 피조적인 땅, 사람의 관계는 필연적인 이치로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생명현상은 특성이 있는데 생명이 있는 것은 복잡하고 정교하여 물질대사를 하며 환경에서 에너지를 받아 생명현상을 유지하며 생장하고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번식한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다양한 생물들을 보고 그 생명 현상의 특성을 연구하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분자 수준에서 부터 생태학적 수준까지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오늘날 생명과학 분야는 전례 없는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하고 질서 있고 조직적인 생물들은 처음부터 그 특이한 형태를 갖고 종류대로 초자연적인 계획과 설계에 따라 창조되어 간다고 보는 견해로서 천지창조의 내용은 우주의 형성, 해와 달의 창조, 인류의 기원 등으로부터 작게는 동물과 초목과 곤충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까지 모두를 알게 한다. 이것은 우주관의 축약 내지 과학의 모태이기도 하고 전 세계적인 보편적 사고구조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나름의 진실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늘은 땅과 사람이 하나로 관계한다. 땅은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관계하고 사람은 하늘과 땅과 하나로 관계한다는 상호간의 사이(間)의 이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 모두는 사랑의 의미와 그 가치로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땅,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행사하는 존재가치가 된 것이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에서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은 사물의 바깥에서 본 현상만을 말하나 이를 상응하는 사물의 안에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에너지야 말로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창조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의 생명은 개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다음 생명으로 이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은 그 자신의 불안전함을 사랑으로 극복하여 우주적 그리스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나의 참다운 모습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롭게 생존하는 그러한 정신의 합일점이 오직 사람이 그리스도적 자아와 완벽하게 합일되는 차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땅과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는 지평을 알게 한다. 여기에 샤르댕은 진화는 궁극적으로 진화의 궁극점이 "오메가 포인트"라 한다. 그는 우주의 목적인 그리스도를 오메가 포인트로 고백한다. 그의 깊은 우주의 통찰을 통해 신앙과 과학은 대립되지 않고 오히려 과학적 탐구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에 대한 탐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사랑하는 것' 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똑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운데서 사랑으로 교통하는 차원임을 알게 한다. 이제 그 날이 오면 이 세계는 새 하늘, 새 땅이 새로운 세계로 태동할 것이며 사람도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화하여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샤르댕은 그의 오메가 포인트 성취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 의해 작동 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에 오메가 포인트 성취는 존재의 믿음의 여하에 달려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의 오메가 포인트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늘, 땅, 사람 모두는 사랑"이며 생명이다. 그리하여 진화는 곧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주 천체의 모든 별들이나 지구 안에 존재하는 공기, 물, 식물, 광물 같은 모든 물질은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은 하늘, 땅, 사람에게 생명과 생명체를 주었고 이를 운행하기 위해 해와 달로 그 지음을 도우면서 사랑한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땅과 사람을 살림(生)을 하고 사람은 그 살림의 원리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하늘에는 사시사철과 팔 계절과 이십사절후가 있고 땅에는 동서남북 사방이 있고 팔 방위와 이십사방위가 있어 인간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지배하에 체질과 그 기질이 따로 따로 되어 기운을 얻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하여 하나인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우리가 눈여겨 성서의 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하늘나라 설파(說破)가 필요할 할 때 마다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우주적인 관계를 알고 늘 비유로 말씀하심에 대하여 주목하게 된다. 예수 이전의 시대의 랍비문헌에는 단 하나의 비유(比喩)도 전해진 바가 없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의 설파(設破)에서 예수의 비유는 무식한 사람이나 어린 아이가 듣더라도 곧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쉬운 이야기들로 비유되어 있음을 본다. 비유는 히브리(민중)인들의 언어인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비유의 소재는 땅의 씨앗, 포도원 곡식, 가라지 그물, 고기 등등 농부나 어부에게 상용하는 익숙한 말들이었다.
예수는 어찌하여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가? 하는 문제와 예수가 사용한 이야기들은 어디서 얻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예수는 자연의 이치를 비유로 하여 사물의 내용을 드러내어 이해할 수 있게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하늘, 땅, 사람으로 열거하면서 하늘나라로 하늘은 해, 새를 예로 든다. 인(人)은 인간으로 농부, 주인-소작농, 주인-과원지기, 주인과 종들, 악한 농부들을 예로 든다. 문화로 보면 파종, 추수, 밭 갈기, 발견과 감춤, 팔기와 사기, 자고 깸, 불태움, 투기, 투쟁, 살인, 위탁과 경작, 땅 살리기로 예로 든다. 지(地)는 땅을 말하며 좋은 땅, 흙, 밭, 포도원, 길, 바위 이다. 식물로는 식물이 겨자식물, 곡식, 가시나무, 밀, 가라지, 무화과나무 등이 있고 씨로서는 씨, 겨자씨이며 성장으로는 씨, 싹, 이삭, 열매를 말하며 그 열매로서 열매, 겨자열매, 무화과로 예를 들면서 땅의 소산을 말한다.
그 외에 보화, 가지, 그늘, 둥지, 배설물을 말한다. 이상의 자연 비유를 땅과 관련하여 열매를 거두기까지 성장과정을 알게 하고 성장의 환경을 알게 하며 열매와 씨가 땅과 결합하는 형태를 보여주는 은밀히 자라나는 씨가 땅을 품으면서 뿌리 내리고 뿌리가 튼튼하면 지표 위로 싹을 틔우고 이삭을 내는 것은 모두가 사랑의 이치를 예수의 비유에서 하늘, 땅, 사람이 각각 무엇과 같고 또 그 천지인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려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한7:17) 한 점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하늘나라 비유의 가르침에서 우주의 세 바탕이 되는 천지인(天地人)이 비유로 하늘나라가 자연의 과정과 인간 문화를 통해 비유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하늘나라(天國)는 이 관계에 따라 의미 되는지를 알게 한다. 현대 예수전승 신학에서 높게 평가받는 비유와 어떤 사상이나 진리를 간결하고도 날카롭게 표현한 아포리즘(aphorism 경구(警句))은 하나같이 자연계와 그 일부인 인간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한다.
예수의 비유야 말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천지인(天. 地. 人)은 예수의 자연 비유를 알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인 관련의 이야기든지 또는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행위와 관련된 사랑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즉 하늘, 땅, 사람의 영역에서 이 세 가지가 다채롭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하늘과 관련된 요소들을 보면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제외하고는 '하늘나라'를 명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명시하는 것이다.
예수의 자연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언급한 것이며 하늘에 새들; 겨자씨, 씨 뿌리는 자 비유와 여기에 '해'를 등장시켜 밤과 낮의 순환을 제시하여 배경을 이루기도 하는 점에 주목하게 한다. 자연은 자연대로 밤과 낮으로 순환하되 농부는 자연 그대로 무위(無爲)의 생활 가운데 밤에 자고 낮에는 깨는 생활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다. 자연의 리듬에 생활의 리듬을 실었고 그러는 동안 땅에 떨어진 씨앗은 성장의 리듬을 보인다. 인간의 행위가 문화라면 이들의 문화는 땅의 일, 자연과 조화로운 사랑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그냥 창조된 것이 아니라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비바람이 부는 천둥소리에 인고의 세월을 거쳐 잉태되는 한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땅 지구환경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생명의 유기체이며 흙이 숨을 쉬어 사람이 되듯이 한 처음의 생명을 이어가는 사랑의 무리들이 우리 사람임을 아는 것이다.
[ 사람이 사랑이다 ] 하는 것은
사람이 땅위에서 사는 것은 땅의 기운을 받기 위함이요.
사람이 하늘 향해 서원(誓願)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받기 위함이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기운을 받기 위함이다.
하늘의 기운 모두는 사랑이다.
본문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 멘.


